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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북으로 사막에 닿고 남으로는 대해에 이르고 동서로는 태양이 뜨고 지점에 이르렀으매, 대략 배와 마차가 갈 수 있는 곳이라면 모두 성조의 위광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중국 명나라 역사를 기술한 '명사'에서 성조라고 칭한 이는 3대 황제인 영락제(1360~1424)다. 베이징(北京)으로 천도한 후 1406년 세계 최대 궁궐인 자금성(쯔진청·紫禁城) 건설을 시작한 영락제는 명의 최전성기를 상징한다.
중국 근대사를 전공한 단죠 히로시 일본 교토여대 교수가 집필한 '영락제'(아이필드 펴냄)에는 명 태조 주원장의 넷째 아들인 연왕이 조카이자 2대 황제인 건문제를 몰아내고 황권을 잡기까지 과정이 담겼다. 국내에서는 처음 발간되는 영락제 전기다.
영락제의 패권적인 대외정책은 권력을 찬탈했다는 오명에서 벗어나 집권기반을 다지기 위한 노력이었다. 환관 정화를 총사령관으로 한 29년간의 남해 대원정도 무역 진흥책이 아닌, '영락의 성세'를 위한 것이었다.
"찬탈을 합법화하고 새 황통을 창출하려면 태조 시대 이상으로 조공의 성세를 실현하는 수밖에 없었다. (중략) 영락제는 중화제국 역사상 최대 영역을 통치했던 원 세조 쿠빌라이의 재래를 자임함으로써 그것을 달성하려고 했다."
명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국가와만 교역하는 해금 정책은 조공 정책과 더불어 명을 중심으로 하는 매우 위계적이고 통제적인 국제 질서를 구축했다.
특히 쿠빌라이 칸도 성공하지 못했던 일본의 속국화를 무력 없이 해냈다는 점에서 저자는 영락제의 역량을 더 높이 평가한다.
천하를 중화와 오랑캐로 나누는 전통적인 화이질서(華夷秩序) 개념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영락제 때 완성됐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영락제 때 세계 제국을 꿈꾸던 명나라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이끄는 오늘날의 중국이 미국에 맞서는 G-2로 부상하고,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를 추진하며 패권주의를 추구하는 모습과 겹친다.
경제 성장과 근대화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1990년대 이후의 중국에서 영락제 전기가 잇따라 출간되는 현상도 그 연장선에서 읽을 수 있다.
'영락의 성세'는 1424년 몽골 원정을 떠났던 영락제가 세상을 떠나면서 결국 종말을 고했다.
한종수 옮김. 324쪽. 1만5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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