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반대 지점에 시진핑 위치 "국제질서 재편 기회 모색"
(상하이=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에 즈음해 정작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국제무대 활동공간을 넓히며 '글로벌 리더' 이미지 굳히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의 취임을 직전에 둔 세계 체제의 전환기에 시 주석은 4일간의 스위스 방문을 통해 트럼프가 비워놓은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일명 다보스포럼)에서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다보스포럼을 배격하며 불참한 틈을 타 시 주석은 이 포럼을 자신의 독무대로 삼았다. 미국과 대립각을 세워온 중국의 시 주석이 개방과 포용의 리더십을 연출해 국제무대에서 미국과의 관계 역전을 노리고 있다.
다보스포럼에서 반(反) 보호무역주의를 천명하며 자유무역 체제의 수호자를 자임한 시 주석은 순방 마지막날에는 유엔 유럽 사무국에선 강대국간의 '안정적이고 균형잡힌' 관계를 주창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0일 시 주석의 이 같은 행보를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역할을 줄이면서 중국을 글로벌 리더 국가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로 해석했다.
주요 2개국(G2) 지도자의 엇갈린 행보는 특히 최근 미국과 중국의 대외 정책방향과 맞물려 극명하게 대비된다.
시 주석은 제네바 유엔 사무국 연설을 통해 "미국과 새로운 관계 모델을 만들어 나가도록 노력하겠다"며 "강대국은 소국을 평등하게 대우하고 패권 추구도 자제해야 한다. 어느 국가도 우발적으로 전쟁을 시작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시진핑 체제 들어 주창해온 '신형 대국관계'를 염두에 둔 발언이다. 시 주석이 2013년 미국 방문 당시 미국에 제안한 국제질서 재편 구상으로 양국이 충돌하지 말고, 상호이익을 존중하며, 공영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
이 모델은 아시아 회귀전략을 추진해온 버락 오바마 정부로부터 중국이 아시아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의도 아니냐는 의심을 받으며 외면받아왔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신고립주의를 채택하고 지역 개입을 줄이며 경찰국가로서 역할을 줄여나가려 하자 이 틈새를 파고 들어 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주도권을 인정받으려는 행보를 취하고 있다.
자오커진(趙可金) 칭화(淸華)대 국제관계학 교수는 "시 주석의 발언은 중국이 국제현안에 균형성을 중시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시 주석은 앞서 다보스포럼에서는 반(反) 보호무역주의를 제창하며 "경제 세계화는 바른 방향이다. 물론 불균형, 거버넌스 등의 문제가 존재하지만 우리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숨 막힐까 봐 먹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는 법"이라고 설파했다.
트럼프가 중국을 상대로 한 강경 조치들을 예고하며 세계화에 반기를 들고 있는 것과 정반대의 지점에 시 주석이 자신의 자리를 놓은 셈이다. 트럼프는 중국이 시장진입을 막는 다양한 보호무역 조치로 미국의 일자리를 훔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실제 중국이 그간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경제 보복조치를 하는 등 보호주의 배격과는 거리가 먼 길을 걸어왔기에 국제사회는 시 주석이 돌연한 자유무역 제창에 다소 심드렁한 반응이다.
또 트럼프가 예고한 중국 환율조작국 지정, 중국상품 고관세 부과 등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일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세상이 온통 자국 중심의 보호 무역주의로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시 주석의 이런 주장은 자유무역 진영의 환영을 받기에 충분했다.
시 주석은 아울러 중국을 자유무역체제의 최대 수혜자로 지칭하면서 "중국의 다자간 자유무역 체제에 대한 지지는 변치 않을 것"이라며 "유엔을 글로벌 체제의 핵심으로 한 국제질서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안토니오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은 시 주석의 연설을 들은 뒤 "중국이 다변화된 세계 체제에서 그처럼 명확한 리더십을 보여준 데 대해 매우 안심스럽다"고 평가했다.
시 주석은 이런 태도는 최근 유엔에 대한 트럼프의 맹렬한 비난과도 대비된다. 유엔 안보리가 팔레스타인 자치령내 이스라엘 건설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자 트럼프는 "유엔은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문제를 유발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서도 "유엔은 큰 잠재력이 있지만, 지금은 모여서 떠들고 즐기는 사람들의 클럽일 뿐"이라며 공개 비난하기도 했다.
jooh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