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도시·위대한 화가들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늦은 밤 홀로 불 켜진 카페에 네 사람이 있다.
붉은 드레스 차림의 여성과 중절모를 쓴 남성이 나란히 앉았지만, 각자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이다. 곁에 있는 종업원의 얼굴에서도 감정을 읽을 수 없다.
나머지 한 남자는 이들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진 채 등을 보이고 앉았다.
고독과 침묵이 감도는 이 그림은 에드워드 호퍼(1882-1967)의 '밤을 새우는 사람들'(1942)이다.
영국의 예술평론가 올리비아 랭이 미국 뉴욕의 휘트니 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만난 것은 30대 중반 낯선 대도시에서 사랑을 떠나보내고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릴 때였다.
그는 '밤을 새우는 사람들'과 대면한 순간 "배제된다는 것이, 서늘한 대기 속에 혼자 서 있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순식간에 맛보지 않을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이후 올리비아 랭은 가난, 성 정체성 등의 이유로 사회에서 소외되고 배척됐지만, 고독과의 싸움을 통해 예술을 꽃피웠던 사람들의 흔적을 쫓는다. 그 과정을 담은 책이 '외로운 도시'(어크로스 펴냄)다.
팝아트로 이름난 앤디 워홀도 가난한 이민가정 출신과 동성애자라는 콤플렉스 등에 시달리며 고립된 존재였다. 평생 잡역부로 혼자 살면서 그리고 썼던 헨리 다거는 세상을 뜬 이후에야 그 이름이 알려졌다.
저자는 1980년대 에이즈 운동을 펼치면서 검열에 맞서 싸운 행동예술가 데이비드 워나로위츠의 삶에 큰 분량을 할애했다.
동성애자이면서 에이즈 환자인 워나로위츠는 30대 중반에 세상을 떠나면서 "세상에는 사회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 말해지지 않은 연대가 있다"는 말을 남겼다.
저자는 "예술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 사이에 스며들어 서로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능력이 있다"면서 "지옥의 얼굴을 하는 이 도시에서 중요한 것은 다정함을 잃지 않는 것, 연대하는 것, 깨어 있고 열려 있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김병화 옮김. 416쪽. 1만5천 원.
에드워드 호퍼의 '가상' 인터뷰를 실은 책도 나왔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미술사가이자 작가인 디미트리 조아니데스는 '위대한 화가들'(이숲)에서 호퍼를 만나러 1965년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에 있는 아파트로 향한다. 그의 곁에는 '밤을 새우는 사람들'이 놓여 있다.
한동안 화가로서 인정받지 못했던 삶에 대해 토로한 호퍼는 "나는 내 그림에 등장한 인물들과 동질성을 느낀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냉혹하고 단절된 세상에 떨어져 버린 존재들"이라고 말한다.
뉴욕과 파리 같은 대도시에서 특히 고독하다는 화가는 "회화에서는 침묵과 고독이 때로는 큰 소리를 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인터뷰라는 형식을 통해 레오나르드 다빈치를 비롯한 화가 52명의 작품 세계와 제작 비화, 동료와의 관계, 시대상, 소소한 사생활의 일화 등을 전한다.
주일령 옮김. 220쪽. 2만5천원.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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