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면보고' 정황…'불법행위를 지시하지 않았고, 몰랐다' 강조 전략 관측
(서울=연합뉴스) 최송아 이보배 기자 = 김기춘(78)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51)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비롯한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 5명의 구속까지 이어진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파장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까지 이어지는 정황이 나타나 주목된다.
'정점'으로 의심받는 박 대통령은 "리스트 작성을 지시한 적 없다"고 의혹을 강력하게 부인했지만,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박 대통령에게 보고가 이뤄진 정황을 파악해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23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특검팀은 박 대통령이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계 인사를 지원 대상에서 배제할 목적으로 작성된 명단에 대해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에게서 서면보고를 받은 정황을 포착했다.
2014년 하반기 문체부의 대통령 현안보고 사안에 지원 배제 명단 관련 내용이 포함됐다는 것이다. 김기춘 전 실장이 보고를 지시했다는 진술도 특검팀이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블랙리스트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달 1일 기자단 간담회에서 "저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고, 최근 한 신문이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한 주체를 박 대통령으로 보도하자 변호인단을 통해 '허위보도'로 규정하며 강하게 부인했다.
'허위 내용의 영장 범죄사실'을 보도한 기자에 대한 형사 고소와 민사소송 방침을 밝혔다. 또 이 내용을 특검에서 취재해 쓴 게 맞는다면 그런 내용을 알려준 '특검 관계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명단 작성을 명시적으로 지시한 적은 없다고 하더라도 박 대통령과 현 정부가 문화계의 '좌파 성향'에 반감을 품었음을 암시하는 정황은 이미 다수 드러난 바 있다.
2014년 11월에는 손경식 CJ그룹 회장을 안가로 불러 CJ그룹의 영화와 방송 사업이 '좌 편향'됐다고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런 상황들을 종합하면 결국 대통령이 직접 '명단을 작성하라'는 지시를 하지는 않았어도 정무수석실이 작성하고 문체부에서 실행한 이 명단과 관련해 보고를 받았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밑에서 '알아서 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문화계 좌파 성향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낀 건 맞지만, 그로 인해 불법행위가 일어나도록지시한 적은 없다는 취지로 '법적 책임'을 피하려는 전략을 택할 거라는 관측도 일각에서 나온다.
조 전 장관 등 다수 관계자는 리스트 집행이나 운영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면서도, 그런 리스트가 존재하는 사실 자체와 현 정부가 좌파 성향 인사를 지원에서 배제하고 정권 성향에 발맞춘 쪽을 지원할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한 점은 부인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팀은 구속한 김 전 실장, 조 전 장관을 연일 소환 조사하고, 이날은 언론 인터뷰에서 관련 의혹을 폭로한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도 불러 조사하는 등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다음 달 초로 예상되는 박 대통령 대면조사에서도 이 부분은 주요 쟁점 중 하나가 될 전망이다.
song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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