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 덕현지구 재개발 반대 주민들 시청 앞 농성 6개월째
(안양=연합뉴스) 강진욱 기자 = 재개발지구 지정 해제를 요구하는 안양시 덕현지구(동안구 호계1동 992 일원 11만6천660㎡) 재개발 반대 비상대책위원회 주민들은 설 연휴 한파 속에서도 천막 농성 중이다.
지난해 7월 하순부터 8월 초순까지 20일간 삼복더위 속에 천막농성을 벌이다 시의 양보로 약 한 달간 농성을 풀었고, 시가 전에 없던 규정을 만들어 재개발 해제 조건을 까다롭게 만들자 지난해 9월 초 다시 시청 정문 앞에 천막을 치고 24시간 농성을 시작해 지금에 이르렀다.
대림과 코오롱 컨소시엄이 시공사로 선정된 덕현재개발지구는 현재 재개발사업의 마지막 단계인 관리처분인가를 신청한 단계이고, 재개발조합과 안양시는 부동산 경기가 계속 나빠질 것을 염려해 빠른 시일 내에 재개발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 재개발반대대책위 주민들로서는 매우 절박한 상황이다.
이들이 천막 안에 두꺼운 매트리스와 전기장판을 깔고 석유발전기를 돌리며 농성을 이어가는 이유이다.
거의 매일 천막에서 잠을 자고 있는 이 모(57) 씨는 27일 "삼복더위 속에서도 그랬지만 혹독한 한파 속에서도 주민들이 농성을 풀지 못하는 이유는 자칫 내 집을 헐값에 팔고 거리로 쫓겨날까 두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상을 더 받아내기 위해 천막까지 치고 농성을 벌이는 줄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우리가 바라는 것은 재개발을 하지 말고 지금 이대로만 살게 해 달라는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 씨는 덕현재개발지구 안에 있는 2층 짜리 단독주택 1층에서 노모와 아내, 아들과 함께 살고 있고, 2층은 세를 주고 있다.
그는 "최근 재개발조합에서 벌인 비공식 감정평가에서 우리 집 보상가는 3억8천만원이었고, 현금청산을 위해 다시 감정평가를 받는다 해도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며 "세입자에게 보증금 주고 나면 남은 돈으로는 안양 어디에서도 지금과 같은 크기의 집을 구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재개발 보상비를 받으면 은행 대출금을 갚아야 해 새로 대출을 받으려면 이자도 높아진다.
이 씨와 함께 종종 천막에서 밤잠을 자는 박 모(65) 씨도 사정이 비슷하다.
1층에 상가가 딸린 집 두 채를 갖고 있는 그는 "두 채 합쳐 70평 쯤 되고 두 채 보상가가 6억 조금 넘는다"며 "두 집에 든 세입자에게 2억5천만원의 보증금을 주고 남는 돈으로는 월세 받으며 지금처럼 살 수가 없다"고 말했다.
비슷한 크기의 아파트는 엄두도 못낼 뿐 아니라, 지금 받고 있는 월세 120만원도 더이상 받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박 씨는 "나처럼 가게 딸린 집을 갖고 있는 사람들 모두 사정이 똑같아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한숨을 쉬고 다닌다"며 "월세도 없어지고 살 집도 줄여 가야 하는 재개발사업에 손 놓고 당하는 처지여서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이 씨와 마찬가지로 노모를 모시고 사는 박 씨도 헐값에 집을 내주고 이사를 가는 일이 없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며칠 전 천막에서 춥게 자다 심하게 감기가 들어 밥 먹을 때 말고는 마스크를 벗지 못한다.
서울시민이지만 월세를 받을 목적으로 지난해 덕현재개발지구 안에 있는 다가구주택을 산 또 다른 박 모(43)씨는 부동산업자에게 속은 것을 뒤늦게 후회하고 있다.
계약서에는 깨알같은 글씨로 '재개발지구 안에 있는 주택'이라는 사실이 명시돼 있었지만, 중개업자가 당초 호가에서 많이 깎았고 재개발이 언제 될 지도 알 수 없다고 꼬드기는 통에 거금 10억을 마련해 11가구가 세들어 사는 주택을 통째로 샀기 때문이다.
최근 비공식 감정평가의 보상가는 약 7억2천만원으로, 재개발이 추진돼 실제로 이 금액만 받는다면 1년여 만에 자산이 2억8천만원 줄어들게 된다.
집을 살 때 적지 않은 돈을 대출받았다는 그는 몇 달 전부터는 아예 하던 일도 그만두고 매일 안양 비상대책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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