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아나' 제작에 참여한 김상진 전 디즈니 캐릭터 디자이너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예전에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여주인공들은 팔다리가 길고, 허리는 잘록한 전형적인 바비인형 같은 모습이었죠. 그러나 모아나는 외형적인 면에서 좀 더 현실에 기반을 둔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모아나' 제작에 참여한 김상진(58) 전 디즈니 캐릭터 디자이너는 기존 디즈니 캐릭터들과 모아나의 차이점을 이렇게 말했다.
김 씨는 모아나의 어린 시절 캐릭터를 탄생시킨 주역이다. 디즈니에서 20년간 활동해온 그는 '겨울왕국'(2013)에서 엘사와 안나의 어린 시절, '빅 히어로'(2014)의 베이맥스까지 수많은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모아나'를 연출한 론 클레먼츠와 존 머스커 감독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강미 넘치는 아이의 캐릭터를 만들고 싶어 했죠. 처음에 이런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 많은 사람이 '전형적인 공주 캐릭터를 벗어날 수 있다'며 좋아했습니다.
김 씨는 25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사실 디즈니 캐릭터들은 시대를 반영해 더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여성 캐릭터로 바뀌어왔다"면서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 지금이 2017년이니까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느냐는 의식이 저변에 깔린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에서는 '모아나'와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이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오르며 함께 인기를 끌고 있다. 전 디즈니 캐릭터 디자이너로서 '너의 이름은.'의 인기에 대한 소감이 궁금했다.
"사실 '너의 이름은.'은 전체를 다 보지는 못했지만, 재미있게 봤습니다. 일본과 미국의 애니메이션은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일본은 다양하고 복잡한 스토리를 다루면서도 매 프레임의 이미지에 중점을 두는 것 같습니다. 반면, 미국은 단순한 줄거리를 바탕으로 캐릭터의 움직임이나 디테일한 표정 등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있죠."
그렇다면 한국 애니메이션은 어떨까.
"사실 한국의 애니메이션은 미국이나 일본 애니메이션보다 제작되는 숫자 자체가 턱없이 부족해 평가하기가 힘듭니다.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사이비'(2013)를 마지막으로 봤죠. '모아나'는 디즈니라는 한 제작사가 만든 56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이에요. 하지만 한국은 아마 전체로 봐도 매우 적은 수의 작품만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김 씨는 한국에서 1천만명 이상을 동원한 '겨울왕국'을 거론하며 "한국에도 좋은 애니메이션을 보려는 관객층이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제 생각에는 한국 애니메이션은 일단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합니다. 여기에 다양한 소재를 시도하는 일본의 장점과 가족 관객을 겨냥하되, 캐릭터의 디테일을 추구하는 미국 애니메이션의 장점을 반영하면 한국의 애니메이션도 발전할 거라 봅니다."
어릴 때 색약(적록색맹) 판정을 받고 미술인의 꿈을 접었던 그는 독학으로 디자인을 공부해 37세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 입성해 20년간 자리를 지켜왔다. 그는 현재 디즈니에서 활동을 접고, 국내에서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 중이다. 애니메이션 전문 스튜디오 로커스가 만드는 '빨간 구두와 일곱 난쟁이'에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합류했다.
"첫 직장은 광고회사였죠. 당시 일러스트레이터로 들어갔는데, 수습딱지도 못 떼고 한 달 만에 해고당했습니다. 그 뒤 애니메이션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캐나다에 있는 업체에 들어갔고, 그 회사도 6년 만에 문을 닫았어요. 그래서 당시 '미친 척하고' 미국 디즈니에 문을 두드렸는데, 운 좋게 입사하게 됐습니다. 벌써 20년이나 됐네요. 이제는 제가 쌓은 경험을 한국의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싶습니다."
fusion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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