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진로 선택이 임박한 듯하다. 대선 행로의 중간 기착지를 곧 결정할 것이라고 한다. 반 전 총장 앞에는 기존 정당 입당, 독자 신당 창당, 별도 세력 구축 후 타 정당과의 연대 모색 등이 놓여 있다. 유력 대선후보인 만큼 반 전 총장의 결정에 정치권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선 승부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반 전 총장은 귀국 후 10여 일간 행보에 관한 한 후한 점수를 받기 어려울 것 같다. 대선 후보로서 뚜렷한 인상을 각인하는 데 실패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오히려 준비가 덜 된 듯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이 없다 보니 다 내 사비로 모아놓은 돈을 쓰고 있다. 어떤 정당이든 함께 해야 겠다고 생각한다"고 토로한 것도 부정적인 사례로 꼽힌다. 귀국 일성으로 '정치교체와 통합'을 외치고 "한 몸 불사를 각오가 돼 있다"고 다짐도 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구체적 비전은 아직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진보적 보수주의자'를 자처한 것을 놓고도 뒷말이 많다. 한마디로 실체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표의 확장성을 겨냥해 진보와 보수를 적당히 얼버무린 설정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최근 한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19.8%의 지지율에 그친 것도 이런 행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는 10% 포인트 가깝게 격차가 벌어졌다. 더 이상 차이가 날 경우 따라잡기 쉽지 않은 궁지로 내몰릴 수도 있다. 대선 승부를 겨냥한 시나리오 중 하나인 '빅텐트론'도 조금은 시들해진 느낌이다. 친박(친박근혜)·친문(친문재인)을 제외한 나머지 세력이 결집해 단일 후보를 내자는 게 골자인데, 그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반 전 총장의 구심력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김종인 전 대표가 "반 전 총장의 귀국 후 모습이 실망스럽고, 국가 비전도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것 같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들린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우리 당은 셔터를 내렸다"고까지 했다.
반 전 총장이 내건 '정치교체'는 결코 쉽게 풀 수 있는 화두가 아니다. 그렇다고 무력하게 포기할 것도 아니다. 정치 입문, 대선 도전의 뜻을 세운 이유였던 만큼 꼭 대선이 아니더라도 낙후한 우리 정치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는 최소한의 역할을 해야 할 책무가 있다. 반 전 총장에게는 '반반'(半半)이라는 별칭이 있다. 이쪽저쪽을 넘본다는 뜻일 것이다. 설령 반대 진영에서 유포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아프게 받아들일 측면이 있다고 본다.
반 총장의 다음 선택에는 당연히 원칙과 소신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대선 캠프 내에선 이참에 보수-진보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지 말고 본래 색깔을 분명하게 드러내자는 의견도 있다고 한다. 결국 결정은 반 전 총장 몫인데, 어떻게 진로를 정하든 무엇이 진정성 있는 최선의 길인지 깊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다시 '반반'이 돼선 절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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