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정상회담 강행 따른 여론 역풍 우려…멕시코 야당 정상회담 취소 요구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국기헌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장벽 건설을 본격화한 가운데 멕시코가 술렁이고 있다.
당장은 공식적으로 격앙된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지만, 이달 말로 예정된 엔리케 페냐 니에토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재고하는 등 반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한 멕시코 고위 관리는 AP 통신에 니에토 대통령이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장벽 건설을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함에 따라 오는 31일로 예정된 정상회담을 취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관계자는 "멕시코 정부는 양국 정상회담을 철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재 이것이 내가 말할 수 있는 전부"라고 말했다.
이는 멕시코에서 트럼프의 국경장벽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확산하는 가운데 정상회담을 강행했을 경우 생길 수 있는 여론의 역풍을 고민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8월 말 니에토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반 멕시코 공약을 내걸었던 트럼프를 멕시코로 초청한 이후 '트럼프에 이용당했다' '트럼프의 들러리를 섰다'는 반발 여론이 거세게 일었던 전례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판단으로 읽힌다.
특히 루이스 비데가라이 멕시코 외교부 장관과 일데폰소 과하르도 장관이 이날부터 이틀간 일정으로 워싱턴 DC를 방문해 양국 간 고위급 회동을 하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국경장벽 건설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을 두고 멕시코 현지에서는 '뺨을 맞았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과하르도 장관은 미국으로 출발하기 전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탈퇴도 불사하겠다는 강경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미국이 멕시코 수출품의 80%를 사들이고 미국 물건이 캐나다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팔리는 곳이 멕시코일 만큼 양국은 밀접한 관계다.
야당은 이날 니에토 대통령에게 정상회담을 취소하라고 요구했다. 야권을 중심으로 니에토 대통령의 지지율이 12%로 사상 최저 수준에 머무는 만큼 취임 초기의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봐야 카리스마를 가지고 강력하게 대처할 수 없다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보수 성향 야당인 국가행동당의 리카르도 아냐야 코르테스 대표는 "우리가 취해야 할 입장은 분명하다"면서 "트럼프와의 정상회담을 취소하든지, 아니면 대통령이 정상회담에 참석해 공개적으로 국경장벽 비용을 내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멕시코는 또 트럼프 대통령의 국경장벽 확대 설치를 막기 위해 기존에 마약과 불법 이민 분야에서 미국에 제공해온 긴밀한 협력을 끊겠는 무언의 압력을 가하며 '패키지딜'을 시도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지금까지 멕시코가 중남미 불법 이민과 마약밀매 등을 막아준 미국의 방파제 역할을 해왔지만, 국경장벽 건설이 강행된다면 앞으로는 협력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국토안보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자신의 대선공약인 국경장벽 건설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운동을 펼치면서 멕시코인들을 강간범과 범죄자로 비하하며 불법 이민자들의 유입을 막기 위해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겠다고 공언했다.
미 정부는 조만간 멕시코 정부와 협상을 거쳐 수개월 안에 장벽 공사에 착수하고 비용을 멕시코에 부담시킬 방침이다. 그러나 멕시코는 장벽 건설 비용을 한 푼도 내지 않을 것이라고 줄곧 천명해왔다.
penpia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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