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홍콩이 지난해 11월 압류했던 싱가포르 장갑차 9대를 2개월 만에 돌려주기로 하면서, 이번 사건이 40년간 이어져 온 싱가포르와 대만의 국방협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중국이 장갑차 압류 초기부터 '하나의 중국' 원칙을 강조하며 싱가포르에 대만과의 관계 단절 압박을 가해온 데다, 싱가포르도 호주와 뉴질랜드 등에서 대체 훈련장을 마련한 상황이어서 양국의 오랜 국방협력 활동이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싱가포르 롱구스발전전략연구원의 리치훙(李氣虹) 연구원은 26일 자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인터뷰에서 "싱가포르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만과의 군사 분야 협력을 수정하고 대만에서의 군사훈련을 줄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그는 이런 협력 수정이 단순히 장갑차 압류 사건 때문은 아니며, 싱가포르가 호주와 뉴질랜드 등에서 더 규모가 큰 해외 훈련장을 확보했기 때문일 것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독자적 안보체계를 보유하고서도 국토 면적이 697㎢로 서울(605㎢)보다 조금 큰 수준인 싱가포르는 대만에서 군 훈련장을 임차해 사용해왔다.
1975년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와 장징궈(蔣經國) 전 대만 총통 간에 체결된 `싱광(星光) 계획' 협정에 따라 싱가포르군은 30년간 매년 2만 명의 병력을 보내 대만군과 합동훈련을 치르거나 독자 훈련을 해왔다.
그러나 싱가포르가 국제사회에서 중국이 실력자로 급부상한 이후 대만에 파견하는 병력 규모를 대폭 줄여왔고, 호주 퀸즐랜드주 타운빌에 대만 훈련장의 10배에 달하는 대체 훈련장도 마련했다.
또 그동안 싱가포르가 남중국해 문제 등에서 미국의 편을 들어왔지만, 도널드 트럼프가 주도하는 미국 신행정부의 경제 정책 등과 맞물려서 친중 성향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으며, 이런 차원에서 대만과의 국방협력을 줄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홍콩의 정치분석가인 두핑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무역에 있어 보호주의적인 정책을 펴면 싱가포르는 무역 등 측면에서 중국과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 따라서 싱가포르와 대만의 군사 교류는 차츰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독자적인 군사적 목표와 관심사항을 가진 싱가포르가 중국의 요구에 쉽게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일각에서 나온다.
국립대만대 정치학자이자 대만국제관계협회장인 필립 양 교수는 "싱가포르도 자체적인 군사적 이익이 있는 만큼 대만과의 오랜 군사협력을 중단하라는 중국의 압력에 굴복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홍콩 세관은 지난해 11월 23일 대만에서 출발해 싱가포르로 향하던 화물선이 콰이충(葵涌) 화물터미널에 도착하자, 선박에서 테렉스 공수 장갑차(ICV) 9대와 관련 부품을 압류했다.
이 장갑차들은 싱가포르가 대만에서 군사훈련에 사용한 것으로, 중국이 이 장갑차 압류를 통해 대만과 오랜 군사협력 관계를 유지해왔고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서 미국의 편을 들어온 싱가포르에 경고를 보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싱가포르는 이후 수차례에 걸쳐 홍콩 세관 당국과 반환 문제를 논의했으나 진전을 보지 못했고, 리셴룽(李顯龍) 총리가 렁춘잉(梁振英) 홍콩 행정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압류 해제를 요구했다.
결국, 홍콩은 지난 24일 2개월간의 조사를 마치고 장갑차를 싱가포르에 반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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