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들은 왜 '신의 직장'을 떠나나

입력 2017-01-27 16:30  

은행원들은 왜 '신의 직장'을 떠나나

은행권 일자리 3년만에 5천명↓…앱팔이, 성과제 등으로 피로도 가중

"희망퇴직 때 목돈 챙겨 떠나자"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1. 시중은행에 다니던 고참 차장 신모(54)씨. 임금피크제까지 1년여 시간이 남았지만 이번에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늦은 나이에 은행에 들어와 지점장을 달지 못했지만 희망퇴직에 따른 목돈 4억여 원을 위안으로 삼고 있다. 그는 퇴직과 함께 노모가 사는 전북 순창으로 돌아가 농사를 지으며 제2의 인생을 꾸며 나갈 예정이다.

#2. 시중은행의 본점에서 근무하는 주모(42) 차장은 최근 희망 퇴직했다. 근무하면서 스트레스가 과중하게 쌓인 탓에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고 생각한 그는 더 늦기 전에 임신이 먼저라고 생각해 퇴직을 신청했다. 날로 늘어가는 과중한 업무도 부담이었다. 그는 3억원 상당의 특별 퇴직금을 거머쥐었다. 근속연수에 따라 자연스럽게 쌓이는 2억원이 넘는 퇴직금은 별도다.

#3. 시중은행에 다니는 김모(43) 차장은 최근 캐나다 이민을 결심하고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경쟁적이지 않은 데다가 애들 교육을 위해서도 캐나다가 더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약 3억원의 특별 퇴직금과 1억2천만원의 별도 퇴직금, 그리고 집을 판 돈이 인생 이모작의 자금줄이었다. 더 나은 삶은 '헬조선'이라 불리는 국내에서는 찾기 어려울 것 같았다. 남들이 좋다고 부러워하는 직장이었지만 그는 과감히 이민을 선택했다.

팍팍해진 은행권에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갈수록 업무 압박이 심해지는 데다가 인공지능(AI), 모바일 거래 등 '핀테크'의 발전 탓에 지속적인 일자리로서는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 가중되는 업무부담…성과연봉제 도입되면?



차라리 돈 많이 줄 때 일찍 떠나자며 '희망퇴직'을 기회로 삼는 은행원들이 늘고 있다. 30∼40대 과·차장급의 경우, 퇴직금과는 별도로 2억∼5억원 정도의 희망퇴직금을 한 번에 받을 수 있다.

KB국민은행은 최근 2천800명이 회사를 떠났다. 최근 2년간 희망퇴직만으로 약 4천명이 나갔다. 전체 은행인력의 20%를 불과 2년 만에 감축한 것이다.

KEB하나은행도 2년간 1천400명이 짐을 싸서 나갔다. 국민과 하나은행에서만 최근 2년간 희망퇴직 등으로 5천500명이 나갔다.

직접 나가라는 사측의 압박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악화한 삶의 질이 은행원들을 일터에서 내몰고 있다.

멤버십확대, 계좌이동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출시 등으로 부가업무가 많이 늘어났다. 입출금 업무만 주로 했던 창구 직원 여성들도 이제는 펀드·보험 판매 등 다양한 부수 업무를 해야 하고, 관련 자격증도 따야 한다.

국민은행 노조 관계자는 "반강제적으로 나간 경우는 아직 신고가 들어온 경우가 없다"며 "대부분 개인적인 이유로 나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은행 업무는 가중되는데 미래 전망이 불투명한 측면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성과연봉제에 대한 부담감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부수 업무가 많은 데 성과제까지 도입되면 영업점은 그야말로 '전쟁터'가 될 공산이 크다.

당장 내년부터 시중은행 사측은 성과연봉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저금리와 맞물려 수익원이 줄어든 은행으로서는 비용이라도 줄여야 '생존'할 수 있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은 "국내 은행의 수익률이 낮은 이유는 수익대비 비용의 비율이 좋지 않기 때문인데, 비용의 반 이상은 인건비"라며 "인건비가 변동비가 돼야 하는데 고정비가 돼 버렸다. 노력과 성과에 따라 보상받는 합리적 성과주의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성과주의는 은행권으로 번지는 추세다. 당장 KEB하나은행은 퇴직 지점장들을 재채용하면서 성과급 비중을 50%까지 늘리기로 했다. 기존 지점장에게는 현재 15%의 성과급만을 적용하는 것에 견줘 세배 이상 비중이 늘어나는 것이다.






◇ 은행업 미래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 '내가 필요할까?'


무엇보다 핀테크가 가져올 은행업의 미래에 대한 불안이 크다. 당장 송금이나 출금 등의 거래의 90% 이상은 비대면으로 이뤄지고 있다. 모바일 대출 상품도 늘어나고 있다. 은행원들의 감원은 전 세계적으로 예고된 수순이다.

시티그룹은 '디지털 파괴(Digital Disruption)'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은행 인력이 정보통신기술의 성장 탓에 2015년 546만명에서 2025년 362만명으로 30%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국내 은행원들도 최근 수년간 지속해서 줄어드는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금융위기 후 지난 2010년 12월 13만3천명선까지 줄었던 국내은행원은 2012년 말 13만7천명으로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2013년부터 다시 감소세로 전환해 작년 상반기 말에는 13만2천명으로 감소했다.

연말 연초에 있었던 희망퇴직 등으로 은행원 수는 13만명 밑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작년 하반기 시중은행에서만 4천명 넘게 줄어든 반면 채용자는 1천명 내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은행들이 비대면 거래를 강화하면서 점포 수도 줄고 있다.

5대 시중은행에서만 지난해 177곳이 줄었다. 사라진 점포 수는 전년인 2015년에 견줘 3배 가까이 늘어났다. 2015년에는 2014년 말에 견줘 58곳이 줄었다.

특히 지난해 사라진 점포 5곳 가운데 4곳이 수도권 점포였다. 모바일 사용 빈도수가 높은 젊은층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대신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은행들은 영업점을 재편하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대부분 6∼7곳의 점포를 하나로 묶어서 '소 CEO' 체제를 구축하는 '허브 앤 스포크' 방식의 영업 전략을 도입했다.

허브 센터의 지점장이 예닐곱 곳의 영업점을 관리하며 인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어 인력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기에 올해 인터넷전문은행이 등장하면 '모바일 퍼스트' 추세는 더욱 빨라질 공산이 크다.

앱 신규 출시 속도는 빨라지고, 모바일 대출 등 모바일 전용 상품도 늘어나는 추세다. 모바일 대출은 대출금리가 영업점보다 0.1%포인트 저렴하다. 인력비용을 줄일 수 있어 원가가 적게 들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공지능까지 가세하고 있다. 각 시중은행은 인공지능을 통한 자산관리(WM)에 매진하고 있다. 이미 송금 등도 인공지능을 활용해서 시행하는 상품이 출시됐다.

한 시중은행의 실무자급 관계자는 "모바일과 AI 거래 등이 늘어나면서 직원들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며 "아이들은 커가는 데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걱정이다"고 말했다.







buff27@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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