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고궁박물관 '영건일감' 번역본 출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경복궁은 조선 왕실을 상징하는 법궁(法宮)이었으나, 임진왜란(1592∼1598)을 겪으면서 모든 전각이 불에 타 사라졌다. 피란을 갔다가 한양으로 돌아온 선조는 경복궁 대신 정릉동행궁, 현재의 덕수궁에 머물렀다.
선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광해군은 창덕궁을 다시 지었으나, 폐허가 된 경복궁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경복궁 중건이라는 과업을 완수한 인물은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었다. 흥선대원군은 고종이 즉위하고 2년이 지난 1865년 공사를 시작해 1867년 복원을 마쳤다.
당시 공사를 주관한 기관인 '영건도감'(營建都監)은 지방 관아에 요구사항을 전하기 위해 수시로 문서를 보냈는데, 일부 문서의 내용이 '영건일감'(營建日鑒)이라는 책에 남아 있다.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은 토지주택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영건일감'을 우리말로 옮긴 책 '국역 영건일감'을 최근 출간하고, 누리집에 전문을 공개했다.
'영건일감'은 경복궁 중건 의궤가 전하지 않는 상황에서 공사 진행 과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기록물로 평가된다. 1865년 4월부터 1867년 12월까지 자금과 자재 조달 정보가 잘 정리된 점이 특징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영건도감에 자금 납부를 독촉하는 내용이 많다는 것이다. 경복궁을 중건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지만, 조선의 재정은 매우 열악했다. 흥선대원군은 백성에게 돈을 걷기 위해 '원납전'이라는 강제 기부금을 만들었고, 조정은 원납전 액수에 따라 상을 내리거나 벌을 줬다.
예컨대 1865년 9월 영건도감은 강원도에 문서를 보내 "춘천부에 사는 백성인 송구진은 본래 매우 부유하나 의연금을 내지 않고 약간의 돈으로 면피할 계획만 세운다"며 "즉시 감영 감옥에 가두고 원납전을 거부한 곡절을 엄히 조사하라"고 명했다.
또 그해 10월에는 "조정의 벼슬아치부터 여항(閭巷)의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두 힘이 닿는 공역을 도와 조금이라도 보탬이 돼야 한다"며 약속한 금액보다 적게 원납전을 낸 양반을 압송해 일벌백계하라고 지시했다.
'영건일감'에는 원납전 이외에도 왕실 능묘와 민간 묘소 주변에서 좋은 나무를 베어 도읍으로 올려보내라는 명령이 계속해서 나온다.
김동욱 경기대 명예교수는 "영건일감은 원납전과 자재 조달의 문제점을 부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시기의 경제적·사회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사료"라고 말했다.
한편 국립고궁박물관은 2월 19일까지 조선의 궁궐 건축 과정을 조명한 특별전 '영건, 조선 궁궐을 짓다'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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