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격퇴·경제 재건에 미국 원조 절실…對이란 관계도 의식해야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미국 정부의 '입국 금지 리스트'에 포함된 이라크 정부가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국제사회가 나서 비난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반(反)이민 행정명령의 피해 당사자이면서도 정작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관계가 틀어질 것을 우려해서다.
이라크는 이슬람국가(IS) 격퇴와 경제 재건을 위해 미국의 지원이 필요한 만큼 미국 정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이번 트럼프 정부의 행정명령에 강하게 반발하지는 못하는 처지다.
이라크에는 IS 격퇴전을 위해 특수부대원 등 미군 5천명이 와 있고 지난 2년 반 동안 이라크군을 공습으로 지원했다. 당장 미국이 발을 뺀다면 이라크 정부의 대테러전은 상당히 곤란해진다.
이 때문에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이번 '사건'에 이라크 정부는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이브라힘 알자파리 이라크 외무장관은 30일(현지시간) 주이라크 미국 대사를 만나 자국민에 대한 미국 입국 금지 조치를 재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알자파리 외무장관은 더글러스 실리먼 미국 대사와 만나 "미국 새 행정부가 이번 틀린 결정을 재고해야 한다"며 "그간 어떤 이라크인도 미국 영토에서 테러에 연루되지 않았다"고 설득했다.
이어 "미국의 우방이자 전략적 협력국으로서 이번 조치는 유감스럽다. 미국 내 이라크 교민 사회도 좋은 평판을 받고 있다"며 미국 정부의 '선처'를 요청했다.
로이터통신은 이를 두고 "이라크 정부가 (강경한) 보복 조치 대신 더 외교적 방법을 택했다"고 해석했다.
전날 미국 정부에 대한 보복 조치를 요구했던 이라크 의회는 30일 관련 결의안을 채택하긴 했다.
이라크 의회는 그러나 이날 가결한 결의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도 않았다.
AP통신은 이라크 의회 결의안엔 대응 조치의 시기나 대상이 명시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셰이크 후맘 하무디 이라크 의회 부의장은 "결의안은 '권고안' 정도로 보면 된다"며 "최소 이라크인만이라도 입국 금지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미 행정부를 압박해 달라고 미 의회에 요청하는 내용"이라고 전했다.
이라크는 동시에 미국의 적성국인 이란의 눈치도 봐야 한다는 점에서 진퇴양난의 위기다.
이라크 행정부가 친이란 성향의 시아파가 주축인 데다 국경을 맞댄 이란 역시 미국 못지않게 IS 격퇴전과 경제 재건, 안보 현안에서 이라크에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이라크 정부는 버락 오바마 전 정부 때는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로 양측에서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을 얻어냈다.
그렇지만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런 '양다리' 전략이 오히려 이라크를 샌드위치와 같은 신세에 빠뜨린 셈이다.
hska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