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박한철 헌법재판소 소장이 31일 퇴임했다. 후임을 맞지 못한 상태로 6년 임기를 마친 것이어서 헌재 소장의 자리는 공백이 됐다. 이로써 9명의 헌법재판관으로 짜여야 하는 헌재는 8인 재판관 비상체제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박한철 소장은 퇴임식에서 "대통령의 직무 정지 상태가 두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중대성에 비춰 조속히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점을 모든 국민이 공감하고 있을 것"이라며 탄핵심판의 신속한 마무리를 당부하는 말을 남겼다. 박 소장은 덧붙여 "사건의 실체와 헌법ㆍ법률 위배 여부를 엄격하게 심사"할 것도 요청했다. 탄핵심판이 신속하지만, 공정성에 의구심이 제기되지 않게 진행돼야 한다는 충언이라 할 것이다.
박 소장은 지난 25일 대통령 탄핵심판 9차 변론에서 "이정미 수석 헌법재판관이 퇴임하는 3월 13일 이전에 탄핵심판 결론을 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박 소장이 이렇게 언급한 까닭은 자명하다. 이정미 재판관이 임기를 마칠 때까지 결론이 나지 않는다면, 재판관 9명 중 2명이 공석이 돼 심판 결과가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탄핵심판의 경우는 재판관 정원의 3분의 2인 6명의 찬성이 있어야 탄핵이 이뤄지기 때문에 8인 체제도 아니고 7인 재판관 체제로는 대표성에서 상당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헌법재판관 충원 문제가 해결될 수 없는 정치 환경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속도를 올리는 방안 외에 다른 해결책은 나오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박 소장의 언급을 놓고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심판절차의 공정성을 의심받을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강하게 반발한 바 있다. 심지어 방어권 행사가 불가능하면 "중대결심(변호인단 전원 사퇴)"을 하겠다는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대리인단은 일단 한 발 뒤로 물러섰지만, 앞으로도 전원 사퇴 카드는 언제든 살아날 수 있는 불씨로 남아 있다. 이에 덧붙여 대통령 대리인단은 증인을 추가로 대거 요청한 상태지만, 이들 증인을 모두 출석시킨다면 3월 13일 선고는 사실상 어렵게 된다. 탄핵심판을 지연시킨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대리인단은 제대로 된 재판을 위해 꼭 필요한 증인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대통령 대리인단이 기대고 있는 명분은 재판의 공정성이며, 그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문제는 신속성과 공정성이라는 두 가지 요구사항이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두 가지 요구사항 모두 충족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이는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아쉽지만 그것이 지금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다만 어느 한쪽이 다소 희생되는 일이 불가피하다면 국가를 위해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기준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대통령 직무정지 상태의 조속한 해소가 될 수도 있고, 탄핵심판의 절차적ㆍ내용적 공정성 확보가 될 수도 있다. 헌재가 어떤 판단을 내리든 헌법 정신과 법률 원칙을 최우선으로 둔다면 묘수를 찾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