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진출을 막아라"…1920년대 북촌을 지킨 조선인 이야기

입력 2017-01-31 17:20  

"일본인 진출을 막아라"…1920년대 북촌을 지킨 조선인 이야기

김경민 서울대 교수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 출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구한말 한양에 온 일본인들은 당시 일본공사관이 있었던 예장동에서 충무로 1가에 이르는 진고개 일대에 모여 살았다.

그러다 1895년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일본인 거주지는 남대문로 일대로 확장됐고, 러일전쟁과 국권침탈을 거치면서 청계천 남쪽에 있는 필지의 대부분을 일본인이 소유하게 됐다.

1920년대 들어 일제가 총독부 건물을 경복궁에 세우고, 주변에 직원 숙소를 건설하면서 일본인의 북진이 경성에 사는 조선인들 사이에서 사회적 쟁점이 됐다. 특히 북촌은 조선인과 일본인이 모두 눈독을 들이는 관심 지구로 부상했다.

이때 등장한 세력이 조선인 디벨로퍼(부동산 개발업자)였다. 이들은 가회동과 익선동 등지의 필지를 쪼개 다닥다닥 붙은 작은 한옥을 지었고, 이렇게 탄생한 한옥밀집지구는 한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쓴 신간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는 1920년대 활동한 대표적 조선인 디벨로퍼인 기농 정세권(1888∼1965)의 삶을 조명한 책이다.

김 교수가 정세권이라는 인물에 주목한 이유는 그가 뚜렷한 역사적 족적을 남겼지만, 대중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정세권의 개발이 북촌의 많은 지역을 커버할 만큼 광폭적이었는데도, 도시사 측면에서 접근한 시도는 없었다"고 지적한다.

정세권은 우리나라 최초의 부동산 개발회사인 '건양사'를 설립해 근대식 한옥을 지었다. 토지 매수부터 기획, 설계, 시공까지 주택 건설 과정을 모두 직접 총괄했다.

건양사가 시공한 '건양주택'은 종래의 한옥과는 달랐다. 수도시설을 한옥 내부에 설치했고, 부엌 바닥에는 타일을 깔았다. 또 햇볕이 잘 드는 남쪽 면을 넓게 설계한 점도 특징이었다.

그는 '집장사' 혹은 '건축왕'이라고 불렸지만, 이익에 눈이 먼 자본가는 아니었다. 돈이 없는 서민들을 위해 신축 주택을 전세나 월세 형태로 제공하기도 했다.

이 덕분에 북촌에는 조선인이 급격히 늘어 일본인이 진출할 수 없게 됐고, 건양사는 매우 유명해졌다.

이에 대해 저자는 "대기업 건설회사가 자체 브랜드를 들고 나온 것이 1990년대 후반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100년 전 대중이 인지하는 주택 브랜드를 각인시킨 디벨로퍼의 존재는 대단한 것이었다"고 평가한다.

이어 "정세권은 본인이 인식했을지 모르나 서구의 도시 이론가에 필적할 만한, 경성을 바꾼 도시계획 이론가이자 실천가였다"고 덧붙인다.

이마. 220쪽. 1만5천원.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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