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反) 이민' 정책에 약 400개의 지방자치 단체가 반발하고 있어 연방정부와 지자체 사이에 정면충돌 조짐이 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불법체류 이민자(불체자)를 추방하지 않고 보호하는 지자체에 연방정부의 재정지원을 중단하겠다는 행정명령을 발동했는데도 불체자 보호 정책을 계속 펴겠다고 밝힌 '피난처 도시'는 워싱턴D.C., 뉴욕, 시카고, 보스턴 등 미국을 대표하는 39개 도시와 364개 카운티 등 400개가 넘는다.
'피난처 도시'를 넘어 캘리포니아 주는 주 천체를 '피난처 주'로 지정하는 방안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캘리포니아에는 230만 명가량의 불법체류 이민자가 거주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 불체자 보호 지자체에 대한 재정지원 중단 규모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시카고의 경우 시 전체 예산의 14%에 이르는 13억 달러를 지원받고 있고, 워싱턴D.C.는 시 예산의 20%를, 뉴욕은 예산 848억 달러의 10%가량인 88억 달러를 연방정부에서 받아쓰고 있다.
막대한 지원금 포기를 무릅쓰고 지자체들이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에 맞서는 것은 인권과 다민족 공동체라는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지자체들이 연방정부의 행정명령을 거스를 수 있는 것은 연방 정책의 집행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치권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자치권을 기반으로 하는 지자체와 재정지원을 무기로 한 연방정부가 이민 정책을 둘러싸고 갈등을 조정하지 않으면 한판 대결이 불가피해 보인다.
가장 강력하게 반발한 지자체는 보스턴이다.
민주당 소속인 마틴 월시 보스턴 시장은 당국의 허가 없이 현재 보스턴에 거주하는 모든 주민을 보호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시장에게 주어진 모든 권한을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여기에 살고 싶으면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들은 내 사무실을 사용할 수 있고, 이 빌딩의 어떤 사무실도 이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람 이매뉴얼 시카고 시장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시카고는 불체자 보호도시로 남을 것"이며 "아메리칸 드림을 추구한다면 누구든 환영한다"고 밝혔다.
백악관이 위치한 워싱턴D.C.의 무리엘 바우저 시장은 "워싱턴D.C.는 연방정부 산하 국(局)이 아니다"고 말했고, 빌 드 블라지오 뉴욕 시장은 "이민자의 출신 국가와 법적 지위에 상관없이, 우리는 그들을 지킬 것"이라고 선언했다.
상당수 지자체가 중앙 정부의 반이민 정책에 동조하지 않음에 따라 양측의 충돌이 불가피하게 된 데 더해, 주 정부와 주 내 지자체 간의 갈등도 불거질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공화당 출신 주지사가 이끄는 주 정부와 민주당 출신 시장이 포진한 지자체 사이에 반이민 정책을 둘러싼 마찰이 표면화하고 있다.
공화당 소속인 그레그 앨봇 텍사스주 지사는 '(불체자) 보호도시'의 당국자들을 "제거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텍사스 주 트래비스 카운티의 샐리 헤르난데스 보안관은 구금된 불법 체류자들을 추방하라는 지시가 내려오더라도 협력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선기간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했던 크리스 크리스티 주지사가 있는 뉴저지주도 주 정부와 지자체 사이에 갈등이 가시화되고 있다.
뉴저지 주 저지 시티의 스티븐 풀롭 시장은 "시로서 원칙과 가치를 지킬 것"이라며 "저지 시티는 이민자의 도시로 건설됐다. 가족을 파괴하고, 이 나라 이민자들을 해치는 명령의 일부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저지주에는 이스트 오렌지, 메이플우드, 뉴어크, 프린스턴, 미들섹스 등이 불체자 도시로 분류된다.
일부 불체자 도시는 경찰들에게 불체자로 의심되는 이들을 발견했을 때 법적 지위를 묻지 말고, 불체자들을 추방할 때까지 구금하라는 이민 당국의 지시에도 불응하라고 지시했다.
'피난처 도시'와 연방정부 사이의 한판 대결이 어느 쪽 승리로 끝날지 미지수다.
불체자 인권과 이민 국가 전통을 지키려는 기류에 박수를 보내는 지지자가 미국 내부와 국제 사회에 적지 않지만, 미국 국민 사이에 이민 정책 개혁 찬성론자가 57%에 달하는 등 불법 이민 단속 여론이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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