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살해식 음해, 가짜뉴스 조롱에 속앓이"…'정치교체' 호응 못얻어
'개헌 고리 빅텐트'도 뜻대로 안풀려…潘 "정치인들 이기주의에 실망"
(서울=연합뉴스) 홍정규 기자 = 국제기구 수장에서 정치 신인으로 변신을 시도했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끝내 현실 정치의 벽에 부딪혀 주저앉았다.
'대통합'과 '정치교체'라는 이상을 품고 지난달 12일 귀국, 범여권의 유력 대선 주자로 주목받았던 반 전 총장은 3주일 만인 1일 오후 대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반 전 총장은 이날 오전 불출마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측근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으며, 심지어 여의도 캠프 사무실 계약까지 마친 상태였다. 가족도 몰랐다는 후문이다.
반 전 총장은 불출마를 결심하게 된 배경으로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정치권의 '인격 살해에 가까운 음해'와 '각종 가짜 뉴스'를 꼽았다.
반 전 총장은 귀국 전부터 야권의 공세에 시달렸다.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던 '박연차 23만달러 수수 의혹'이 대표적이다. 동생과 조카의 사기 혐의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고 무관하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이런 해명은 순수하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퇴주잔 논란'은 반 전 총장 측이 꼽는 대표적인 '가짜 뉴스' 사례다. 선친 묘소에 성묘하는 동영상이 악의적으로 편집됐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크고 작은 실수가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입길에 오르고 조롱의 대상이 됐다.
반 전 총장의 지지율은 눈에 띄게 떨어졌다. '최순실 사태' 전까지만 해도 한때 독보적인 1위를 달렸지만, 귀국 3주일이 지나면서 그의 지지율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10%대에 머물렀다.
반면, 반 전 총장이 내세운 정치교체, 분권형 개헌과 차기 대통령 임기 단축을 고리로 한 정치권의 연대는 "순수한 애국심"에서 비롯됐다는 그의 설명에도 이렇다 할 호응을 얻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그가 '러브콜'을 보낸 야권 인사들은 물론 새누리당 의원들, 심지어 고향인 충청권 의원들조차 합류를 망설이는 처지에 내몰렸다. 세(勢)가 형성되지 않으니 지지율이 반등의 계기를 잡지 못하고, 지지율이 지지부진하니 세가 형성되지 않는 '악순환'에 빠져든 셈이다.
이 과정에서 여야의 유력 정치인들과 만나 합종연횡을 시도했지만, 정치권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을 설득하지 못하거나, 도리어 이용만 당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반 전 총장은 이날 불출마 기자회견에서 "일부 정치인들의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이기주의적 태도도 지극히 실망스러웠고, 결국 이들과 함께 길을 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에 이르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반 전 총장이 중도하차 상황을 자초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국내 상황에 어두운 데다 준비가 미흡했다는 점은 캠프 내부에서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무소속으로 버티기에는 인력, 조직, 자금 등 모든 측면에서 압박을 받았으리라는 해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민주당 등 야권이 추가의혹에 대한 대대적 검증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반 전 총장 측에게 부담이 됐을 것이라는 설도 나오고 있다.
zhe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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