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연합뉴스) 황철환 특파원 = 이슬람 반군 알샤바브의 살해 위협을 피해 소말리아를 탈출한 모하메드 다히르 사이드(31)와 가족들은 2년 전부터 인도네시아에 머물고 있다.
호주가 해상을 통한 난민 유입에 빗장을 걸면서 중도 경유지로 여겼던 인도네시아에 발이 묶인 것이다.
이제 그와 인도네시아에 있는 다른 수천 명의 난민들은 또 다른 기회마저 잃을 처지에 몰렸다.
그나마 난민 수용에 개방적이었던 미국조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 이민' 행정명령을 계기로 입국 문턱을 높이기 시작한 때문이다.
사이드는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여기 있던 사람 대부분은 미국으로 갔다"면서 "이제 미국이 소말리아인과 이라크인, 이란인, 수단인은 안 된다고 하면 우린 또 다른 곳으로 가야만 한다"고 말했다.
2일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에는 현재 세계 각국 출신의 난민 1만4천명이 머물고 있으며, 이중 7천500여명은 이미 유엔으로부터 난민 지위를 인정 받았다.
하지만 재정착을 받아 들이는 국가가 많지 않은 탓에 이들 대다수는 수년째 기약 없는 기다림을 이어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시리아 난민 수용을 무기한 중단하고, 다른 국가 출신의 난민 수용도 120일 간 중단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회계연도당 11만 명이었던 수용 가능 최대 인원도 5만 명으로 절반 이상 줄이기로 했다.
인도네시아 내의 난민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발을 구르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테러 위험국으로 간주해 미국 입국을 금지한 시리아와 이라크, 이란 등 이슬람권 7개국 출신 난민 2천700여명은 희망을 잃어가는 분위기다.
2억5천만 명의 인구가 사는 광대하지만 가난한 국가인 인도네시아는 난민의 피난처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실제 이 곳의 난민들은 대부분 호주나 뉴질랜드 등 다른 선진국으로 가려다 실패한 이들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들의 체류권을 인정했지만, 생계비 등은 지원하지 않고 있다. 아울러 인도네시아 내의 난민은 취업이 허용되지 않으며, 현지 학교에 가거나 공공 의료기관을 이용할 수도 없다.
국제 난민지원단체의 지원이 없다면 최소한의 생활조차 불가능한 환경인 셈이다.
한때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에 함락됐던 이라크 제2 도시 모술에서 2년전 탈출한 카이룰라는 5개월 전 난민 심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던 중 트럼프 미 대통령이 반이민 행정명령에 서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될 지 계속 생각한다"면서 "나만이라면 괜찮지만 내 아들들, (난민 캠프에서 태어나) 신분증조차 없는 내 딸은 어떻게 될지,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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