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의 한국현대사…"세상은 무섭고 달아날 수 없는 곳"

입력 2017-02-02 17:37  

김훈의 한국현대사…"세상은 무섭고 달아날 수 없는 곳"

아홉 번째 장편소설 '공터에서'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작가 김훈(69)이 5년여 만에 아홉 번째 장편소설 '공터에서'(해냄)를 냈다. 20세기를 꽉 채워 살다 간 마씨 집안 아버지와 아들들의 이야기다. 역사소설 3부작으로 불리는 전작 '칼의 노래'·'현의 노래'·'남한산성'에 비해 시대적 배경이 오늘날에 가까워졌다.

아버지 마동수는 한일병탄조약이 체결되던 1910년 태어났다. 형 마남수는 만주 길림에서 한의사로 개업했고 마동수는 형에게 학비를 받아 상하이(上海)에서 한의학을 가르치는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낙제를 거듭하다 퇴학당하고 외항선 갑판을 닦거나 시내 전차 검표원 일을 했다. 상하이에서 만난 하춘파는 중국인 아편 밀매상을 죽이고 돈을 털었다. 밀정을 '정리'하는 일도 했다. 마동수는 하춘파의 소개로 한인 망명자 자녀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마동수는 역사의 질곡에 속박된 삶을 살았다.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자 원남동 로터리에서 스탈린 만세를 불렀고 전세가 뒤바뀌면 국군 만세를 외쳤다. 마동수는 부산으로 피난 가 피묻은 군복을 세탁하는 일을 했다. 빨래터에서 만난 부인 이도순은 도립병원 빨래꾼이었다. 부부는 가축 우리를 개조한 부산 우암동 피난민 수용소에서 두 아들 마장세와 마차세를 낳았다.

마차세의 삶도 시대의 그늘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았다. 마차세는 군복무 중인 1979년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가난 때문에 대학에 돌아가지 못했다. 복학 대신 주간지 기자로 취업했지만 언론통폐합 조치로 직장을 잃고 물류회사에서 오토바이 배달을 했다. 대학에서 만난 박상희와 결혼할 때 아내의 지도교수는 주례사에서 '생활을 물적 토대 위에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형 마장세는 베트남전쟁에서 고립됐다가 총상을 입어 이동이 불편한 동료 김정팔을 사살하고 귀환했다. 김정팔은 전사로 처리돼 국립묘지에 묻혔고 마장세도 훈장을 받았다. 제대 후 한국이 아닌 남태평양으로 건너가 고철사업을 벌였고 아버지 장례에도 불참했다.

"한국은 아버지 마동수가 헤매는 나라이고, 마장세의 총에 맞아 죽은 김정팔이 훈장을 달고 국립묘지에 묻혀 있는 나라였다." 마장세는 자신을 둘러싼 사슬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남태평양에서 고철을 수거해 한국에 공급하는 일이 마장세의 사업이었다. 한국쪽 사업 파트너 김오팔은 죽은 김정팔의 형이었다. 김오팔이 고철을 납품하는 회사 대표 오장춘은 동생 마차세와 군생활을 함께 한 동료였다. 오장춘은 마장세의 얼굴에서 동생을 읽고 알은체를 하며 가족에 대한 기억을 불러들인다.

마동수는 죽기 전 일본 경찰에 얻어맞고 나온 형과 남산경찰서 뒷골목에서 해장국을 먹던 59년 전을 떠올린다. "그때, 세상은 무섭고, 달아날 수 없는 곳이었다. 기억은 바래어져서 아무런 현실감이 없었지만, 임박한 죽음보다 더 절박하게 마동수를 옥죄었다."

이도순은 6월항쟁이 일어난 1987년 요양원에서 죽었다. 어머니가 숨질 때 마차세는 노사화합 회식비를 법인카드로 결제했다. 작가는 두 세대에 걸친 한국현대사의 사건들을 훑지만, 판단 대신 그 속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평범한 소시민의 삶을 그린다.

작가는 "내 마음의 깊은 바닥에 들러붙어 있는 기억과 인상의 파편들을 엮은 글"이라며 "나의 등장인물들은 늘 영웅적이지 못하다. 그들은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리고, 죄 없이 쫓겨 다닌다. 나는 이 남루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고 썼다. 360쪽. 1만4천원.

dad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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