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부족·이웃 갈등·생활 불편, 농촌 적응 힘들게 해
교육 통해 적응력 키우고 치밀한 영농·경영 계획 '필수'
(전국종합=연합뉴스) 박병기 기자 = 대전서 건축업을 하던 김모(45)씨는 3년 전 아내와 초등학생 자녀 2명을 데리고 충북 영동으로 귀농했다. 사업이 신통치 않은 것도 이유였지만, 평소 꿈꾸던 전원의 여유를 즐기기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
그는 1년 가까이 대전∼영동을 오가면서 차근차근 귀농을 준비했다. 허름한 농가주택을 구입해 헐어낸 뒤 새집을 짓고, 제법 큰 포도밭도 사들였다.
그러나 막상 맞닥뜨린 농촌생활의 현실은 예상보다 냉혹했다. 유일한 수입원이나 다름없는 포도농사로 벌어들인 돈이라고 해야 한 해 1천여만원이 전부여서 당장 생활이 궁핍해졌다. 주변 권유로 블루베리 묘목을 심었지만, 돈이 되려면 몇 년을 기다려야 했다.
또래 이웃이나 친구가 없어 외로워하는 가족을 지켜보는 것도 힘이 들었다. 결국 김씨는 지난해 농사를 접고 다시 도시로 돌아왔다.
3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내 농촌에 뿌리내리지 못한 것이다. 도시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계획 없이 사들인 농기구 등은 애물단지가 됐다. 그만큼 경제적 손실을 본 것은 당연하다.
◇ 귀농, 로망 넘어 현실로 접근해야…逆귀농 증가
최근 도시생활을 접고 농사를 짓거나 농촌에 살려고 귀농·귀촌하는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통계청 조사 결과 2015년 귀농(귀어 포함)은 1만2천950가구, 귀촌은 31만7천409가구로 전년에 비해 10.9%(1천275가구)와 6.0%(1만8천52가구) 늘었다.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 은퇴와 무관치 않다는 게 전문가들이 분석이다.
그러나 충분한 준비 없이 농촌을 찾았다가는 실패하기 십상이다. 귀농에 대한 환상이나 막연한 기대감은 농촌 정착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기 쉽다.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가 2012∼2015년 귀농·귀촌한 1천가구씩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농촌적응에 실패해 다시 도시로 되돌아오거나 계획 중인 경우는 각각 4%와 11.4%로 나타났다. 10명 중 1명은 다시 농촌을 등지고 역(逆) 귀농한다는 얘기다.
이 조사가 전화를 걸어 확인하는 방식으로 이뤄진 점을 감안하면 실제 역귀농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방자치단체도 귀농·귀촌 성공 사례만 앞세워 전입자를 끌어모으는데 주력할 뿐 실패 사례는 통계조차 내지 않는다. 실패한 사람도 '실패'란 말을 입 밖에 내지 않기 때문에 외부에 노출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김창수 충북 보은군 귀농귀촌계장은 "고립 생활을 하는 귀농·귀촌인의 실패 확률이 높은 데, 이 경우는 역귀농해도 파악이 불가능하다"며 "심지어 이장조차 귀농인이 다시 마을을 뜬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 빈약한 농업 소득, 이웃 갈등 등 원인
귀농인들이 꼽은 역 귀농 사유는 소득 부족(37.8%), 농업노동 부적응(18%), 이웃 갈등·고립감(16.9%), 가족 불만(15.3%), 생활불편(12%) 순이다. 귀촌인 역시 소득 부족(44.2%), 생활불편(37.3%), 이웃 갈등·고립감(7.7%), 자녀교육(7.1%) 등을 농촌적응 실패 원인으로 들었다.
귀농 7년 차로 영동군 귀농인협의회장을 맡은 최규찬(61)씨는 "농사는 시행착오 과정을 겪게 되고, 그나마 목돈을 만질 수 있는 과수는 묘목을 심어 가꾸는데 3∼5년이 걸린다"며 "이 기간 생계대책이나 여유자금 등이 있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농식품부 통계에 나타난 농지면적 3.3㎡당 소득은 논농사 2천500원, 밭농사 3천500원, 과수 1만원에 불과하다"며 "현실을 충분히 알고 그에 맞춘 경영계획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도시에 비해 땅값이 싸다고 해서 지나치게 넓은 농지를 덜컥 사들이거나 비싼 농기계를 장만하는 것도 위험하다. 일정 기간 농업에 적응한다는 마음으로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땅에서 농사를 배우는 게 중요하다.
하영택 농협 밀양시연합사업단장은 "농촌에 정착하려면 자연에 순응하면서 욕심내지 않고 사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며 "무리한 투자나 섣부른 기대는 실패의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가족 내 일체감을 형성하고, 이웃과 잘 어울리는 것도 중요하다. 이방인답게 몸을 낮춰 이웃이나 마을 공동체 속에 파고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안대순 옥천군 귀농인협의회장은 "귀농인은 텃세부린다고 생각하고, 원주민은 외지인이 들어와 마을 분위기를 흐린다고 여기다보니 불협화음이 생기는 것"이라며 "막걸리라도 한 통 들고 마을회관이나 노인정 등을 드나드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충고했다.
◇ 실패 없는 귀농…철저한 준비가 중요
귀농을 고민한다면 먼저 농업 관련 기관·단체나 선배 귀농인을 방문해 필요한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직접 경험한 선배로부터 생생한 경험을 듣는 것은 방향을 잡는 데 매우 중요하다.
지방자치단체에서 마련하는 귀농캠프 등 실제 농촌생활을 체험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많다. 서울시는 이달 13일부터 귀농·귀촌 희망 시민을 대상으로 귀촌(전원생활) 과정, 귀농 창업과정, 티칭-팜 귀농과정 등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가족 합의를 통해 귀농이 결정되면 영농기술을 충분히 배우고 익힌 뒤 선택한 작목의 재배여건이나 생활환경 등을 고려해 정착지를 선택해야 한다.
주택과 농지는 작은 규모에서 출발하는 게 좋고, 최소 3∼4군데 후보지를 골라 비교해보고 선택하는 게 좋다.
귀농·귀촌 관련 박람회를 찾아 정보를 모으는 것도 중요하다.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 시책도 눈여겨봐야 한다. 조건만 맞으면 정부로부터 최고 3억원의 창업자금과 7천500만원의 주택자금을 융자받을 수 있다.
지자체 차원에서 최대 1천만원의 소득사업비를 비롯해 집수리 비용, 주택 설계비, 농기계 구입비 등도 준다. 이웃과 친해지라고 집들이 비용까지 대주는 곳도 있다.
농식품부 산하 귀농귀촌종합센터의 송민영 팀장은 귀농·귀촌에 성공하려면 귀농 교육기관이나 농업기술센터나 농협 등에서 마련하는 교육을 반드시 받도록 권하고 있다.
송 팀장은 "오래 준비할수록 실패 가능성이 줄어든다"며 "짧게는 30시간부터 6개월 이상의 심화 교육도 준비돼 있으니 귀농을 고려한다면 자신에게 맡는 교육을 충분히 받아 농촌 적응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bgi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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