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존 탈피 목소리…"동맹관계 잠정 동결 고려해야" 주장도
(시드니=연합뉴스) 김기성 특파원 = "동맹인 호주 총리보다 러시아 대통령과 더 친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미국에 의존하는 청소년 국가에서 성인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 "현 미국 행정부라면 동맹관계의 잠정 동결 등 비상 방안을 준비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안하무인격으로 호주 총리와 최근 통화한 내용이 적나라하게 공개되면서 호주가 강한 후폭풍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맺은 양국의 난민 교환협정을 깡그리 무시하는 태도를 넘어 맬컴 턴불 총리와의 통화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고 전화마저 일방적으로 끊은 데 대해 호주는 경악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
덩달아 세계 2차대전이래 미군이 가는 곳마다 호주군을 파견할 정도의 핵심 동맹국이라는 지위가 무색해진 만큼 두 나라 관계를 되돌아봐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게 일고 있다.
보수성향 전국지인 디 오스트레일리안은 미국과 동맹관계가 여러 차례 삐걱거리기는 했지만 최근 수십 년 사이 최악이라며 트럼프에게 호주 총리는 푸틴 대통령보다 못하다는 인상을 줬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또 "이제 트럼프가 오바마의 약속을 존중하느냐의 문제를 넘어 호주에 믿을 만한 파트너인가 하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백악관이나 국무부가 난민교환 협정을 존중한다고 밝혀왔지만, 트럼프가 1일(이하 현지시간) 트위터에 "나는 이 멍청한 협상(dumb deal)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단번에 뒤집은 것도 트럼프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사례로 지목됐다.
난민교환 협정의 미래를 아무도 모르고, 아마도 트럼프 자신도 모를 것이라 게 신문의 진단이다.
유력지 시드니모닝헤럴드(SMH)도 강력한 동맹이라고 안주하지 말고 호주가 제 길을 찾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신문은 미국과 호주, 뉴질랜드 3국 간 태평양안전보장조약(ANZUS)이 미국의 반대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처럼 확고한 안보조약이 되지 못한 사례 등을 지적하며 이번이 두 나라 간 긴장관계 중 최악이라고 평가했다.
신문은 이어 이번 일을 계기로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폐기할 필요는 없지만, 호주가 "미국에 의존하는 청소년 국가에서 좀 더 성인 국가로 나아가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시드니대학의 역사가인 제임스 커랜 교수는 "두 나라 지도자 간에 이처럼 생생한 사적 대화가 유출된 것도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임기 초반에 상대적으로 작은 문제로 이같은 긴장 상태가 된다면 큰일 발생 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호주전략정책연구원(ASPI)의 피터 제닝스 원장은 한발 더 나아갔다.
제닝스 원장은 "30년 이상 동맹관계를 지켜봐 왔지만, 1980년대 초 이래 가장 어려운 시기"라며 "우리로서는 ANZUS의 잠정 동결이나 동맹 간 협력 일시 중단을 포함한 비상 방안들을 생각해볼 만하다"라고 공영 ABC 방송에 말했다.
호주 내 여론이 좋지 않자 줄리 비숍 호주 외교장관은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과 전화 통화를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과 호주는 오바마 정권 임기 말인 지난해 11월 미국이 호주 역외 난민시설의 수용자 일부를 받아들이는 대신 호주는 코스타리카에 있는 미국 역외 수용소의 난민을 받아들이기로 합의한 바 있다.
cool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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