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욱진 지역 대표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세종시…생가 관리 '부실'
(세종=연합뉴스) 박주영 기자 = 곡식이 누렇게 익은 황금빛 들판 사이로 검은색 정장을 빼 입고 손에는 중절모를 든 남성이 걸어가고 있다.
목가적인 풍경 속에서 한껏 차려입은 남자의 자태가 어딘가 결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박수근, 이중섭과 함께 한국 근현대 미술의 선구자로 꼽히는 장욱진 화백의 대표작 '자화상'이다.
작가가 1950년 6·25 전쟁 당시 고향인 충남 연기군 동면으로 피란했을 때의 심정을 그린 작품이다.
작가는 이 작품 외에도 나무, 아이, 새 등 고향인 연기군, 즉 지금의 세종시를 배경으로 많은 작품을 그렸다.
세종시는 올해 '장욱진 화백 탄생 100주년'을 맞아 장 화백을 지역의 대표 브랜드로 육성하는 등 각종 사업을 펴기로 했다. 장 화백 마케팅을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시민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자는 취지다.
시는 올해 하반기에 미술전을 개최하고 용역을 통해 장욱진기념관을 건립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이미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 장욱진 관련 미술관을 건립, 운영 중이어서 성사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경기 양주시는 2012년 장흥면 석현리에 70억원을 들여 장욱진 미술관을 건립, 2014년 개관했다. 유족들은 미술관 건립을 위해 시에 유화와 벽화 등 장 화백의 작품 232점을 기증했다.
경기 용인시는 장 화백이 말년에 거주했던 기흥구 고택이 주변 아파트단지 개발로 훼손 위기에 처하자 2008년부터 문화재로 등록해 보존해 오고 있다.
이처럼 장 화백과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는 지자체가 수년 전부터 장 화백 마케팅을 펼치고 있지만, 세종시는 지난해에야 100주년 기념사업을 구상하는 등 미온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이 때문에 시의 장욱진 기념관 사업은 중복에 따른 타당성 문제와 예산 낭비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작지 않다.
사실 장욱진 화백의 고향이 세종시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연동면 송용리에 그가 나고 자란 생가가 현재까지 보존돼 있지만, 표지판이 설치돼 있지 않아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게 된다.
경부선 철로 건너편 도로변에 있는 생가에는 진입로가 없어, 들어가려면 차를 갓길에 세우고 차도를 걸어가야 한다.
내비게이션에 '장욱진 고택'을 검색하면 나오는 것은 경기 용인시에 있는 고택뿐이다.
세종시 생가는 지도에도 나오지 않기 때문에 주소를 알고 있어야만 찾아갈 수 있어 관광지라고 하기에도 무색하다.
생가와 떨어진 도로 건너편 '화가 장욱진 생가'라고 쓰인 조그만 비석이 겨우 구색만 갖추고 있는 형편이다.
지역을 대표하는 예술인으로 내세우려면 현재 있는 문화 자원부터 제대로 관리하는 등 내실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 관계자는 "그동안 장욱진 화백 생가를 도외시한 게 사실"이라며 "늦었지만 장 화백 고향이 세종시인 건 확실한 만큼 용역을 통해 생가를 복원하고 인근 도로를 정비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j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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