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세한 서영훈 전 한적 총재, 민족번영·화합에 한평생 힘써

입력 2017-02-04 17:16  

별세한 서영훈 전 한적 총재, 민족번영·화합에 한평생 힘써

시민사회·언론·정계 넘나들며 남북관계 발전에도 공헌




(서울=연합뉴스) 홍국기 기자 = 4일 별세한 서영훈 전 대한적십자사(한적) 총재는 민족번영과 화합에 한평생을 쏟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입원 중이던 서울적십자병원에서 향년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서 전 총재는 1923년 평안남도 덕천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한 고인은 폭넓은 독서로 식견을 넓혀 충성, 용서, 화합을 뜻하는 '충서화'(忠恕和)를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광복 직후 상경해 조선민족청년단에 가입한 고인은 김구, 장준하 등 독립운동가 출신 지도자들과 가깝게 지내며 종합교양지 '사상'(思想)의 발행에 참여했다.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던 고인은 1953년 대한적십자사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다.

청소년 국장으로 부임한 고인은 청소년 적십자를 설립해 중·고등학생들에게 해외연수 기회를 제공하는 등 미래에 기둥이 될 청소년 활동에 앞장섰다.

1972년 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에 오른 고인은 1981년까지 10년간 같은 자리에서 사랑과 봉사의 '적십자인'으로 헌신했다.

이듬해인 1982년부터 1986년까지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인 안창호 선생이 창립한 민족운동단체인 흥사단의 이사장을 지냈다.

고인은 남북 교류에도 힘썼다는 평가를 받는다. 1972년 8월 평양에서 열린 제1차 남북적십자회담을 시작으로 수차례 열린 회담에서 남측 대표로 참석해 남북화해와 협력을 위해 애썼다.

당시 외부 강연을 통해 "북한을 통해 배울 건 배워야 한다"고 밝혀 눈길을 끌기도 했다. 1996년에는 대북지원 민간단체인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를 맡았다.

또 1988년 한국방송공사(KBS) 사장과 한국방송협회장을 맡는 '의외의 선택'을 하기도 했다.

고인은 2000년 새로 창당한 새천년민주당의 대표를 맡으며 정계 진출을 선언, 또다시 세간에서 의외라고 생각하는 선택을 감행한다.

그해 열린 총선에서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된 고인은 민주당 대표로 재신임받아 당내 화합을 강조하며 의욕적인 정치 행보를 보였으나, 이듬해인 2001년 제22대 대한적십자사 총재로 약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간다.

2003년 임기를 마친 이후에도 왕성한 사회운동과 민족번영 활동을 벌이며 시민사회 운동의 원로 역할을 했다.

대한적십자사는 고인에 대해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에 적십자 사무총장으로 직접 앰뷸런스에 탑승해 광주 시민들을 구호하기도 했다"며 "인도주의 발전에 큰 업적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남북 이산 가족상봉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이산가족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일에도 앞장섰다고 대한적십자사는 전했다.

redfla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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