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새로 쓴 이채원 "후배들에게도 좋은 날 오겠죠?"
평창서 열린 크로스컨트리 월드컵서 역대 최고 12위 '쾌거'
(평창=연합뉴스) 이대호 기자 = "지금 난리가 났습니다. 우리나라 크로스컨트리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말입니다."
한국 크로스컨트리 간판 이채원(36·평창군청)의 월드컵 12위 소식을 접한 대한스키협회 관계자의 말이다.
모두가 힘들 것이라고 말했던 크로스컨트리 월드컵 15위 진입을 '맏언니' 이채원이 해냈다.
이채원은 4일 강원도 평창군 알펜시아 크로스컨트리센터에서 열린 2016-2017 국제스키연맹(FIS) 크로스컨트리 월드컵 여자 스키애슬론 15㎞에서 46분2초7로 전체 12위를 기록했다.
세계 정상급 선수가 출전해 스키의 '메이저리그' 격인 월드컵에서 한국 크로스컨트리 선수가 거둔 최고 성적이다.
한국 크로스컨트리는 이제까지 세계 무대와 적지 않은 격차를 보였던 게 현실이다.
동계 전국체전에서 금메달만 61개를 딴 이채원도 월드컵 최고 성적이 2015년 스위스 다보스에서 기록한 43위였을 정도다.
신동빈 대한스키협회 회장 취임 후 대폭 지원이 늘어난 스키 대표팀은 올해 스노보드 이상호의 쾌거를 시작으로 알파인스키 정동현, 여기에 이채원까지 점차 세계와 격차를 좁혀가고 있다.
경기가 끝난 뒤 만난 이채원은 "저도 오늘 이렇게까지 할지 몰랐다. 국민께서 응원해주시고, 우리나라에서 경기해서 그런지 더욱 힘이 났다"면서 "비록 (이번 시즌) 탑 선수가 안 왔지만, 월드컵 12위가 너무 기쁘다. 고맙고 또 고맙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경기가 열린 알펜시아 크로스컨트리센터는 이채원에게 특별한 곳이다.
평창 출신인 이채원에게는 고향에서 치른 첫 월드컵이라 의미가 있고, 선수로 뛰는 마지막 올림픽이 치러질 곳이기도 하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하는 월드컵이라 조금 부담도 됐다"면서 "코스는 외국 못지않게 힘들다. 쉴 구간이 없는데, 그래도 최고의 코스"라고 말했다.
크로스컨트리 선수는 보통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에 선수 기량에 전성기를 맞이한다.
다른 동계 종목과 비교해도 30대 선수가 적지 않은데, 이채원은 그중에서도 '노장' 축에 속한다.
이날 경기에 출전한 29명의 선수 가운데 이채원의 나이는 두 번째로 많다.
아직 한국에서 그를 따라올 후배가 없지만, 이제는 '인생 제2막'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채원은 "2022년 올림픽은 현재로는 뛸 생각이 전혀 없다. 훈련 때마다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다. 오늘도 악으로 뛰었다"며 웃었다.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대회부터 이어진 이채원의 올림픽 도전은 평창에서 다섯 번째를 맞이한다.
그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는 올림픽에서 후회 없는 경기를 하겠다"며 "당연히 목표는 금메달이지만, 현실적으로는 20위권 진입을 바란다"고 했다.
중요한 건 이번 쾌거가 이채원에서 끊기면 안 된다는 점이다.
그는 "우리나라는 아직 외국 선수와 비교하면 현실적으로 수준 차이가 난다. 하지만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며 "앞으로 우리 후배들에게도 좋은 날이 오지 않을까 한다"는 소망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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