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랜드' 수입한 백명선 판씨네마 대표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지난해 극장에 간판을 내건 영화는 1천573편. 이 가운데 외화는 79%인 1천239편에 달한다.
한국영화의 관객 점유율이 50%가 넘는 상황에서 할리우드 직배사가 아닌 중소 수입사들이 들여온 외화가 100만 명 이상을 동원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 그래서 320만 명을 불러모은 '라라랜드'의 성공은 '초대박'이라 부를 만하다.
'라라랜드'를 국내로 들여온 백명선 판씨네마 대표도 사실 이 정도까지 성공은 예상하지 못했다. 백 대표는 최근 연합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라라랜드'의 수입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라라랜드'의 시나리오만 보고 2014년 11월 아메리칸필름마켓(AFM)에서 판권을 사들였다고 한다.
"당시 제가 봤던 시나리오는 햇병아리 같은 사회초년생들이 미국 LA의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발을 내딛는 이야기였죠. 주인공들의 나이도 훨씬 어렸고, 엠마 왓슨과 마일스 텔러가 캐스팅된 상태였어요. 그런데 판권을 사고 나서 몇 달 뒤 시나리오도 바뀌고, 주연 배우도 엠마 스톤과 라이언 고슬링으로 바꾼다는 연락이 왔더라고요. 결과적으로는 잘 됐지만, 그때는 '주인공들이 나이가 왜 많아졌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걱정도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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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대표가 '라라랜드'의 판권을 손에 넣기까지 과정은 쉽지 않았다. '라라랜드'의 시나리오에 반해 AFM에 직접 가서 판권을 살 예정이었지만 출발 일주일 전,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두 다리가 크게 골절돼 대수술을 받아야 했다.
"별안간 AFM에 못 가게 됐죠. 저는 수술을 받고 나서 팔에 주렁주렁 링거를 단 채 병실에서 전화와 태블릿PC로 미국 현지와 판권 협상을 했습니다. 낮과 밤이 뒤바뀐 상황에서도 다른 회사들과 경쟁에 이겨 '라라랜드'를 샀죠. 그렇게 제게 온 영화입니다."
사실 외화를 수입하는 일은 도박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영화를 보지 않고 시나리오 단계서부터 미리 판권을 사야 한다. 판권 가격은 작품에 따라 제각각이지만,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대에 달하기도 한다.
이렇게 선구매를 하는 것은 나중에 좋은 영화로 완성됐을 때는 살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는 의미다.
백 대표는 "'그때 내가 왜 안 샀지' 하는 미래의 후회를 방지하기 위해, 혹은 '잘 되겠지' 하는 기대감에 모험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미국에서 불문학과 컴퓨터공학을 공부한 백 대표는 2003년 영화 수입배급업체 판씨네마를 세운 뒤 수많은 작품을 국내에 소개했다. 흥행에 성공한 작품도 있지만, 실패한 영화도 많다. 이 중 343명을 동원한 '비긴 어게인'(2014)이 현재까지 그가 수입한 영화 가운데 흥행 1위다. '트와일라잇'(2009), '이클립스'(2010), '서칭 포 슈가맨'(2012) 등도 백 대표의 손을 거쳐 국내 관객과 만났다.
그렇다면 '될성부른 영화'를 고르는 기준이 있을까. 백 대표는 "요행 반, 안목 반"이라고 말한다.
"일단 시나리오가 좋아야 합니다. 블록버스터든, B급 호러든 시나리오상에서 감정 연결이 잘 돼야 합니다. 코미디 영화인데 웃기지 않는다든가, 스릴러인데 내용이 앞뒤가 안 맞는다든가 하면 안 되죠. 물론 시나리오가 좋다고 영화가 잘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만드는 과정에서 감독의 능력에 따라 바뀌기도 하죠. 그래서 영화를 선구매하는 것은 일종의 모험입니다."
'라라랜드'를 살 때도 '뮤지컬 영화는 국내에서 흥행이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어 주변에서 말렸다고 한다.
"저는 오히려 뮤지컬 영화라서 신선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무엇보다 '위플래시'를 만든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연출력을 믿었고요. 어렵게 수입했는데, 국내 관객들도 많이 사랑해주셔서 저랑 통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마 이런 게 영화를 수입하는 묘미 아닐까요?"
fusion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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