깻잎 하루에 1만5천장 따야…외국인 노동자들 '피눈물'
내국인보다 1.5배 작업 물량…장시간 노동·저임금·비닐하우스 새우잠
(양산=연합뉴스) 최병길 기자 = 밥상이나 고깃집 야채로 오르는 깻잎 한 장을 따면 임금은 얼마나 될까.
깻잎 한 장 따는데 3원.
깻잎 1상자에는 10장짜리 100묶음씩 1천 장이 들어 있다.
하루에 깻잎 15상자를 따는 사람들이 있다. 무려 1만5천 장을 따야 한다.
바로 농업이주노동자들이다.
비전문 취업비자(E9)로 지난해 캄보디아에서 한국에 온 쓰레이텅(24·여) 씨는 경남 밀양시 한 깻잎 농장에 일했다.
농장 주인인 사업주와 쓴 근로계약서에는 하루 8시간을 일하기로 했다.
쓰레이텅 씨에게 주어진 하루 작업량은 깻잎 15상자였다.
농장주는 한 상자씩을 더 따면 3천원씩을 더 주겠다고 했다.
그는 일을 해보니 하루 8시간 일해서는 도저히 15상자를 채울 수 없었다.
아침 6시부터 일을 시작해 오후 7시까지 점심 먹는 시간을 빼곤 종일 쉼 없이 일했다.
매일 10시간 넘게 일해야 겨우 작업량을 맞출 수 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노련한 내국인 작업자도 하루 10상자를 겨우 작업하는 것을 알게 됐다.
쉬는 시간도 없었다. 농장주가 초코파이와 음료를 직접 들고 와 밭고랑에서 먹도록 하는 시간이 유일한 휴식시간이다.
그가 기록해 놓은 지난해 7월 달력에는 토요일 하루를 빼고 하루 10시간이 넘는 노동시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렇게 죽도록 일하고 그가 손에 쥔 월급은 고작 110만~130만원.
농장주와 근로계약서에 쓴 하루 8시간 노동 기준 임금이다.
캄보디아에서 함께 온 동료들도 대부분 그와 같은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렸다.
잠자리도 열악했다.
비닐하우스 안 패널 집이나 컨테이너에서 새우잠을 자야 했다.
야외 간이 화장실에는 악취가 진동했고 샤워실에는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비가 오면 천장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져 방안에 물이 가득 고였다.
허술한 시건 장치로 항상 성폭력 피해 위협을 느껴 잠도 깊이 못 잤다.
농장주는 임시 주거시설을 제공하면서 1인당 월 20만∼30만원 씩을 임금에서 공제했다.
이렇게 노예처럼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마치 지옥 같았다.
쓰레이텅 씨 등은 더는 견딜 수 없어 외국인노동자 인권단체를 찾아 어려움을 털어놨다.
이들은 "사장님과 약속한 근로시간보다 훨씬 더 오래 일했는데 일한 만큼 돈을 주지도 않았고 임금도 체불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외국인노동자 인권단체 도움으로 지난해 9월 고용노동부 양산지청에 사업주를 최저임금 위반 등으로 진정서를 제출했다.
조사에 들어간 양산지청은 피해 노동자와 농장주를 불러 조사했다.
조사를 벌이는 동안 피해 노동자들은 경기도 안산에서 양산을 수차례 오가며 아무런 일을 하지 못했다.
답답한 시간이 훌쩍 갔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리고 지난달 초 외국인노동자 인권단체에 온 양산지청 조사결과는 행정종결이었다.
농장에서 일하다 보니 근로시간과 휴게시간 증빙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정해 양산외국인노동자의집 사무국장은 "고용노동부가 농업 이주노동자들의 노동 인권 침해를 외면하고 있다"며 "근로감독과 개선의무가 있는 고용노동부가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민 인권을 위한 부산울산경남 공동대책위원회와 밀양깻잎밭 이주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시민모임은 3일 고용노동부 양산지청에서 농업이주노동자 노동인권 침해 사례를 폭로하고 노동부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공동대책위는 피해 농업이주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해 법적 대응 하기로 했다.
choi21@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