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삼성전자가 6일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디스플레이 등 전자 계열사들과 함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탈퇴원을 냈다. 삼성물산, 삼성중공업, 삼성생명 등 나머지 계열사들도 조만간 탈퇴할 것이라고 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작년 12월 6일 국회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정경련 지원금을 더 이상 내지 않고 탈퇴하겠다"고 말했다. 그 약속을 두 달여 만에 실천한 셈이다. 국내 4대 그룹 중에는 LG가 작년 12월 27일 가장 먼저 전경련에 탈퇴 의사를 통보했다. 현대차와 SK도 탈퇴 형식과 절차를 내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밖에 KT가 탈퇴 의사를 공식화했고, 산업은행·수출입은행·한국전력·한국가스공사 등도 탈퇴신청서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 계열사들의 탈퇴는 전경련에 치명타가 될 것 같다.
삼성그룹의 15개 계열사가 전경련에 내는 회비는 2015년 한해 133억원으로 전체 회비 492억원의 27%였다.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그룹이 낸 회비는 모두 378억원으로 전체의 77%에 달했다. 전체 회원사는 600개를 상회하지만 그중 4대 그룹 계열사들만 이탈해도 전경련은 버티기 어렵다. 협회 운영비를 거의 다 회비로 충당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국회 청문회에서 주요 그룹 회장들의 탈퇴 시사 발언이 나오자 전경련은 곧 자체 개혁방안을 내놓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승철 상근부회장 자신이 '최순실 게이트'에 깊숙히 연루된 처지인지라, 사실 전경련의 환골탈태를 기대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제 삼성 그룹의 탈퇴로, 전경련이 재기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사라진 것 같다.
이승철 부회장은 지난달 19일 최순실 공판에서 "미르·케이스포츠재단은 청와대 지시로 설립했고, 출연 액수와 출연 기업, 임원진도 모두 청와대에서 정했다"고 증언했다. 이 재단 설립이 자신의 아이디어였다는 기존 주장을 뒤집고, 전경련이 정경유착의 복마전이었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그러지 않아도 휘청거리던 전경련은 이 증언으로 결정타를 맞았다. 한마디로 미르·K스포츠재단은 '최순실 게이트'의 진앙지이다. 그런 불법 재단의 설립을 전경련이 주도한 사실이 법정에서 확인된 순간 전경련은 존재의 명분을, 기업 회원사들은 이 단체 잔류의 명분을 잃었다. 전경련은 1961년 설립 이후 일해재단 출연, 불법대선자금 모금 등 대형비리로 여러 차례 위기를 맞았다. 그때마다 심한 곤욕을 치르면서도 어찌어찌 위기를 넘겨 오늘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행운이 따를 것 같지 않다. 미국 헤리티지 재단 같은 싱크탱크로 전환하는 방안이 일각에서 나왔지만 스스로 쇄신 방안을 내놓지 못한 터라 그런 구제책도 물거품이 될 듯하다.
삼성그룹은 이날 그룹의 컨트롤타워 격인 미래전략실도,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가 끝나는대로 해체한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은 국회 청문회에서 "창업자인 선대 회장이 만든 조직이어서 조심스럽지만 국민에게 부정적인 인식이 있다면 없애겠다"고 말했다. 삼성이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미전실이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평가가 있다. 하지만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음성적인 기능도 없지 않았다. 삼성이 진정한 글로벌 일류기업이 되려면 이런 전근대적이고 퇴행적인 관행을 단호히 끊어야 한다. 다른 대기업들도 전경련 탈퇴를 디딤돌로 삼아 새로운 혁신의 전기를 마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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