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희망은 절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종합)

입력 2017-02-07 16:41  

정호승 "희망은 절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종합)

열두 번째 시집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출간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희망은 무엇으로 이뤄질까요. 화두를 던져봤어요. 나는 희망을 간절하게 소망하는데 어떤 희망을 소망하는가, 그건 우리 삶에 주어진 숙제일 거예요. 지금까지 절망의 가치를 폄하하고 살았는데 절망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함으로써 오히려 희망을 얻을 수 있는 것 아닐까요."

한국을 대표하는 서정시인 정호승(67)이 열두 번째 시집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창비)를 냈다. 시인은 2013년 시집 '여행'에서 "아직도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의 오지뿐이다"('여행')라며 인생이라는 여행길을 더듬었다. 시집을 내고 두 달 뒤 "마지막으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짜장면 한 그릇/ 먹고"('북촌에 내리는 봄눈') 싶어 했다는 아버지를 여의었다.

"부모님을 보내면서 비로소 내 인생도 완성되고 정리되는 것 같다"는 시인은 삶을 관조하는 시선을 유지하며 다시 희망을 말한다. 이미 1980년대 초반에 "슬픔을 섞어서 침묵보다 맛있는/ 짜장면을 먹으며 살아봐야겠다"('짜장면을 먹으며')며 슬픔이 희망의 재료가 될 수 있음을 내보인 시인이다. 희망의 레시피는 더욱 풍성해졌다.

"희망은 기쁨보다 분노에 가깝다/ 나는 절망을 통하여 희망을 가졌을 뿐/ 희망을 통하여 희망을 가져본 적이 없다// 나는 절망이 없는 희망을 거절한다/ 희망은 절망이 있기 때문에 희망이다"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부분)

반대쪽의 어두운 면이 없는 희망은 희망이 아니라는 언명이 다소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시각장애인 야구'를 보면 절망과 희망은 서로의 존재근거가 될 뿐 아니라 수시로 뒤집히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시각장애인들이 야구를 하는 까닭은/ 희망이라는 안타를 치기 위해서다/ 단 한번이라도 9회 말 투 아웃에서/ 희망의 홈런을 치고/ 절망의 1루로 달리기 위해서다"






시인이 말하는 희망은 소유나 욕망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이라는 그릇에 무엇을 담을지에 대한 윤리적 태도에 가깝다. "내 손은 하나를 가지면 꼭 하나를 더 가진다"('무소유에 대한 명상')는 게 인간의 평범한 속마음이지만 그럼에도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시인은 스스로 묻는다.

강물에 빗댄 삶은 이렇다. 시인은 "강물도 강을 다 채우지 않고 바다로 간다"('결핍에 대하여')며 비어있음을 아름답다 말하고 "강물이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가야 바다가 되듯"('낮은 곳을 향하여') 겸손함을 사람됨의 완성으로 여긴다.

그러나 시인에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가치는 사랑이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1997)를 떠올리게 하는 역설적 표제의 이번 시집은 사랑의 영원함을 선언하며 시작한다.

"어느 산 밑/ 허물어진 폐지 더미에 비 내린다/ 폐지에 적힌 수많은 글씨들/ 폭우에 젖어 사라진다/ 그러나 오직 단 하나/ 사랑이라는 글씨만은 모두/ 비에 젖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는다" ('폐지' 전문)

시인은 40년 넘도록 독자들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반듯하고 단정한 시를 써왔다. 1972년 동시로 먼저 등단했고 어른들을 위한 동화도 여러 편 발표했다. 한결같은 서정의 시심에는 "고유한 자세를 잃지 않는 것"을 도울 '버팀목'을 곳곳에 박아두었다.

"꾸덕꾸덕 말라가는 청춘을 견디기 힘들지라도/ 오직 너만은 굽실굽실 비굴의 자세를 지니지 않기를/ 무엇보다도 별을 바라보면서/ 비굴한 눈빛으로 바라보지 말기를/ 돈과 권력 앞에 비굴해지는 인생은 굴비가 아니다/ 내 너를 굳이 천일염에 정성껏 절인 까닭을 알겠느냐" ('굴비에게' 부분)

시인은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지금은 95세 노모를 모신다. 시집에는 아버지를 기억하고 어머니와 쓸쓸함을 나누는 시가 여러 편이다. 시인은 "다음 시집을 낼 때는 일흔 살쯤 되지 않겠느냐. 인생이 물리적 시간이라는 걸 절실히 깨닫는다"고 말했다. 100쪽. 8천원.

dad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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