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TV유치원'·EBS '딩동댕 유치원' 명맥 유지하며 진화 시도
"아이들 친구 역할 변하지 않아…부모 TV선입견 아쉬워"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아빠가 출근할 때 뽀뽀뽀∼" "TV 유치원 하나 둘 셋! 파파파파파 하고파∼" "거야 거야 할 거야 혼자서도 잘할 거야∼"
집집마다 꼬마들을 깨우기 위한 방송사별 유아 프로그램의 '기상송'이 TV에서 울려 퍼지면 아이들이 어느새 일어나 체조를 따라 하던 시절이 있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평일 아침 TV 편성표의 터줏대감이었던 유아 프로그램들은 상업성 강화라는 방송사 기조 속에서 축소 또는 폐지됐다. 현재는 KBS 2TV 'TV유치원'과 EBS '딩동댕 유치원' 정도만이 명맥을 유지하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 방송사별 유아 프로그램 역사와 현주소
유아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건 1980년대부터다.
MBC TV '뽀뽀뽀'는 1981년 5월 25일 첫 방송 됐다. 또 이듬해 3월과 9월에는 EBS TV '딩동댕 유치원'과 KBS 2TV 'TV 유치원'이 각각 '텔레비전 유치원'과 '하나 둘 셋'이란 이름으로 첫발을 뗐다.
이들보다는 단명했지만 1994년 신설된 KBS 2TV '혼자서도 잘해요'도 귀에 쏙쏙 박히는 기상송과 체조로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다.
이들 프로그램의 공통점은 모두 아침에 방송됐다는 점이다. 아빠가 출근하고 엄마가 집을 치우느라 정신없는 시간 유아 프로그램은 아이들의 든든한 친구가 됐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아침 시간대 유아 프로그램의 입지는 눈에 띄게 축소됐다. 대신 구매력 있는 주부를 겨냥한 아침 드라마나 미니시리즈 재방송, 정보성 프로그램이 자리 잡았다.
그렇게 유아 프로그램들은 상업성 강화의 흐름 속에서 구매력 있는 시청자들이 가장 없는 시간대인 오후 3∼4시로 밀려났다.
그나마도 공영방송인 KBS와 EBS에서만 'TV유치원'과 '딩동댕 유치원'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최장수 유아 프로였던 '뽀뽀뽀'는 2013년 8월 종영했고, 오전 유아프로그램은 '딩동댕 유치원'이 유일하다.
유아 프로그램은 방송사 내에서도 기피분야 1순위로 꼽히는 처지가 됐다. 필요한 프로그램이지만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아이들의 높아진 눈을 사로잡기 위한 그래픽과 세트 인형 제작을 위한 품은 갈수록 더 든다.
8일로 8천회를 맞은 '딩동댕 유치원'의 이슬예나 PD는 "전반적으로 출산지수도 낮아 유아 수가 적기도 하고, 부모들이 더 많은 시청각 콘텐츠를 원하면서도 막상아이들에게서 TV를 떼놓으려는 심리가 있어 고민이 많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TV 유아 프로그램은 화려한 애니메이션보다는 손인형을 통한 연극 등 '슬로우'한 측면이 많다"며 "그러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가장 큰 요인은 광고 수익이 잘 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 '스타등용문'도 옛말…VOD 시대 진화 '고심'
과거 유아 프로 출연자는 '스타'가 되면서 스타등용문으로 주목받았다.
'뽀뽀뽀'의 왕영은, 최유라, 장서희, 이의정, 조여정 등은 '뽀미 언니'로 스타반열에 올랐다.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씨도 '하나 둘 셋'으로 사랑받았다.
1991년 출범한 SBS TV에선 1995년 '열려라 삐삐창고'가 방송됐는데 당시 MC는 현재까지 다양한 예능 프로에서 활약 중인 방송인 홍진경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현상조차 옛말이 됐다.
이 PD는 "이 역시 수익성 저하로 투자가 충분치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흡입력 있는 캐릭터와 스타성 있는 친구들을 발굴하려면 그만큼 투자를 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최근에는 연예계에서 어린이 프로로 데뷔하면 나중에 그 이미지를 탈피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아동들이 유아 프로를 소비하는 방식 역시 변했다. 과거에는 무조건 TV 앞에 앉아야 프로그램을 볼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VOD로 시청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엄마들 역시 아이들을 밖에 데리고 나갈 때 태블릿 PC나 스마트폰을 갖고 다니기 때문에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를 선호한다.
이에 'TV유치원'은 2천여 개 영상이 담긴 애플리케이션을 내놓고, '딩동댕 유치원'도 카카오 스토리채널을 통해 부모에게 시청 가이드를 제공하는 등 변화를 시도해왔다.
VOD로 보는 시청자가 더 많기 때문에 포털사이트나 유튜브 홈페이지에 그때그때 새로운 영상을 올리는 일은 필수다.
조금 적응할만하면 계속 진화하는 디지털 시대와 치열한 광고시장 속에 방송사 제작환경은 각박해지고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아이들은 매일 자라고, 유아 프로그램 역시 형태는 변화할지라도 해야 할 역할이 꾸준히 있다.
지금 그 역할은 적은 보상으로도 사명감으로 자기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사람들이 채운다. 출발 35년 만에 8천회를 맞는 '딩동댕 유치원'은 그래서 우리에게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lis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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