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혁신 대표주자 미국 위상에 종말 가져올 수도"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김현재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 된 후 실리콘 밸리는 그와의 화해를 모색했다.
대선 과정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며 그와 각을 세웠지만, 일단 대통령이 된 이상 트럼프와 갈등을 빚어서 좋을 것이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또 그의 정책이 실리콘 밸리의 이익에 반하는 것도 별로 없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테크 기업 종사자들로서는 트럼프가 추진하는 세금 공제 혜택이나 소득세 감면이 시행되면 주머니가 더 두둑해지게 된다. 또 외국에서 벌어들인 이윤을 본국으로 송환할 길도 열리게 되고, 약달러 정책은 국외 사업의 이익을 늘려주게 될 것이다.
멕시코 국경에 장벽이 세워지더라도 실리콘 밸리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불편할 일은 없다. 한 마디로 트럼프의 성향이 마뜩치는 않지만, 실리콘 밸리의 이익을 해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그와의 공존을 모색할 참이었다.
그러나 트럼프가 반이민 행정명령에 서명한 후 실리콘 밸리의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실리콘 밸리의 120여 개 기업이 샌프란시스코 제9 연방항소법원에 "반이민 행정명령이 이민법과 헌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공식 입장을 전달했다. 애플과 구글, 페이스북 등 주요 테크 기업이 총망라됐다. 트럼프 경제자문단에 참여했던 우버 CEO는 사퇴했다. 실리콘 밸리에는 연일 그의 반이민 행정명령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사실상 트럼프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트럼프의 이민정책에 실리콘 밸리가 이토록 분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뉴욕타임스(NYT)는 8일 "그의 이번 행정명령, 그리고 이어질 또 다른 반이민 규제는 세계 혁신의 중심지로서 미국의 위상이 종말을 고하게 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전자결제 스타트업인 스트라이프의 창업자 존 콜리슨은 NYT 인터뷰에서 "실리콘 밸리가 존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국경을 초월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 어디를 가든 모든 지역 사람들이 한결같이 '어떻게 하면 실리콘 밸리처럼 될 수 있는가'라고 묻지만, 런던과 파리, 싱가포르, 호주가 실리콘 밸리와 같은 테크 허브를 만드는데 실패한 원인은 능력 있는 기술자들이 모두 실리콘 밸리로 가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미국정책재단이 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인 87개 회사를 분석한 결과 대상 기업의 절반 이상이 미국 이외 지역 출신자들에 의해 창업됐다. 71%의 기업은 이민자를 핵심 임원으로 고용하고 있었다.
구글의 공동 창업자 가운데 한 명은 러시아 출신 이민자이고, 현 CEO는 인도 출신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CEO 역시 인도 출신이며, 이베이와 야후는 이민자들이 출범시켰다. 페이스북의 최대 자회사인 인스타그램과 왓츠업 모두 이민자들에 의해 창업됐으며, 애플은 이민자의 아들이 만든 회사다.
일각에서는 실리콘 밸리가 이민정책에 민감한 이유를 H1-B 비자로 인해 해외 인력을 값싸게 고용할 수 기회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지만, 이는 실리콘 밸리를 마치 제조공장처럼 인식한 데서 비롯된 그릇된 생각이라고 NYT는 지적했다.
신문은 "지금의 테크 기업들은 공장이 아니라 스포츠팀과 유사하다"면서 "혁신과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을 비싸게 스카우트하는 것이 현실이며, 그런 사람들 가운데 이민자가 많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숫자의 문제일 수도 있다. 미국의 인구는 전 세계 인구의 5%에 불과하다. 새로운 생각의 5%만이 미국인의 머리에서 나올 수 있다는 단순 계산이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혁신적인 생각은 다른 관점과 다른 문화적 경험에서 나온다는 점에 비춰 볼 때 이민자들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더 많이 내는 이유는 숫자 이상의 문제일 수도 있다고 NYT는 덧붙였다.
kn020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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