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릴린 엘롬 '프랑스식 사랑의 역사'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대선 후보인 에마뉘엘 마크롱(40) 전 경제장관의 아내는 그보다 25살 많다. 마크롱이 고등학교 시절 학생과 연극반을 지도하던 국어(프랑스어)교사로 만난 두 사람은 우여곡절 끝에 2007년 결혼했다. 15세의 10학년 학생이던 마크롱은 자녀 3명을 둔 당시 40세의 기혼녀선생님 브리지트 트로뉴에게 사랑을 느꼈다. 트로뉴의 자녀 중 하나는 마크롱과 동급생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라면 아연할 일이지만, 프랑스에서는 둘의 선택을 존중하는 분위기다.
프랑스인들은 언제나 사랑에 열중한다. 관습이나 평판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우며 욕망과 시기, 질투 등 사랑이 몰고 온 감정에도 솔직하다. 또 육체적 쾌락은 사랑에서 필수불가결하다고 믿는다. 이러한 문화는 언제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미국의 작가 매릴린 옐롬이 쓴 '프랑스식 사랑의 역사'(시대의 창 펴냄)는 12세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900년간의 문학 작품을 통해 프랑스인의 사랑 문화를 보여준다. 스탠퍼드대 클레이먼 젠더 연구소에 몸담은 저자는 이를 여성주의적 입장에서 분석한다.
저자가 12세기를 출발점으로 삼은 이유는 음유시인들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낭만적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의 개념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낭만적 사랑'의 탄생은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부를 만한 사건"이라고 강조한다. 집안의 이해타산에 따라 결혼했던 중세 귀부인들은 사랑 그 자체를 옹호하는 서정시와 기사도 이야기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커다란 욕망은 남편 대신에 그대를 갖는 것. 단, 그대가 내 뜻대로 모든 것을 하겠다고 약속해야만 하지"라고 읊조린 12세기 백작 부인의 대담한 시에서 볼 수 있듯이 욕망의 주체나 객체로서 여성의 존재감은 커졌다. 이때부터 여성 작가들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수백 년에 걸친 프랑스 궁중 문화 속에서 여성의 환심을 사는 기술로 정의되는 '갈랑트리'(galanterie)도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갈랑트리는 방종과 동일시됐다. 특히 왕의 성적 방종을 허락하는 사고방식은 군주제가 몰락한 이후에도 이어졌다. 저자는 현대 프랑스인들이 대통령의 혼외 관계를 크게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는 그에 기인한 것으로 해석한다.
프랑스 혁명기 여성들이 남긴 회고록은 사랑보다는 대의를 더 숭고한 개념으로 여겼던 공화주의자들을 통해 갈랑트리의 시대가 저물었음을 보여준다.
책은 아르투르 랭보가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을 드러낸 산문시 '지옥에서 보낸 한 철' 등의 작품을 훑으며 여느 사람들이 정상적인 사랑으로 받아들이기를 꺼리는 주제도 후반부에서 다룬다. 마크롱처럼 연상의 여성을 사랑하는 젊은 남성이라는 관계가 프랑스적이라는 지적도 담았다.
"오늘날 우리는 육체적 사랑 앞에 사랑의 정서적 가치가 사라지는 시대를 사는 듯하다. 미국이나 프랑스, 그리고 유럽의 다른 곳에서도 연애는 이런 궤도를 그리며 진행한다. 사랑에 대한 냉소적 태도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퍼지고 있다." 책 마지막 장에 실린 작가의 말로, 이 책을 기획한 배경을 보여준다.
전작 '유방의 역사' '아내의 역사'에서 보여준 것처럼 저자의 풍부한 사회문화사적 역량이 드러나는 책이다. 사랑을 회의주의적인 시선으로 접근한 17세기 라파예트 부인의 소설 '클레브 공작부인'을 비롯해 짤막하게 등장한 수백 편의 문학 작품을 곁들여 읽으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강경이 옮김. 480쪽. 2만2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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