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이라고 자조하면서 환생, 전생에 사로잡힌 민초들이 많다.
뉴스만 틀면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고, 출구 없는 갑갑한 현실에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린단다.
그런 민초들을 사로잡은 애니메이션이 '너의 이름은'이다. 관객 350만 명을 모으고 "인생의 애니메이션"이라는 찬사를 듣는 '너의 이름은'은 일본산이다.
'너의 이름은'이 '조용한 돌풍'이라면 증강현실게임 '포켓몬고' 열풍은 요란하고 시끄럽다. 전국팔도, 방방곡곡에서 난리다. '포켓몬고' 역시 모국은 일본이다.
일본의 뻔뻔한 역사 왜곡 행진에 피가 거꾸로 솟고, 우리가 별반 뾰족한 대응을 하지 못해 더욱 참담해지는 요즘이지만,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영혼을 사로잡는 문화를 막을 수는 없다.
메마른 가슴을 적셔주고, 낙이 없던 일상에서 잠시라도 모든 시름을 잊고 '초집중'하는 재미를 심어준 문화 콘텐츠 앞에서는 국경도, 방화벽도 소용없다.
마찬가지로 대국이랍시고 온갖 폼은 잡으면서, 실제로는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으로 쩨쩨하게 구는 중국에서도 한류 열풍을 막기는 쉽지 않다.
드라마 '도깨비'와 '푸른 바다의 전설'은 한한령을 가볍게 뛰어넘어 중국 대중 속으로 쑥 파고들었다. 이들 드라마의 불법 해적판이 절찬리에 유통되고, 그것을 본 누리꾼들의 반응이 웨이보와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된다.
한류 스타의 미모와 화장법에 반한 중국인들은 앞다퉈 한국 화장품을 사들인다. 또 한국 패션에 관심을 보인다.
문화의 힘이다.
백마디 말이 필요 없게 만드는 게 한 편의 영화·드라마요, 한 자락의 음악이요, 한 권의 문학이다.
나라 사이 없던 길도 내고, 없던 관심도 샘솟게 하는 게 문화다. '이생망'이라는 열패감 속에서도 한줄기 위안과 희망을 주는 게 문화다.
대한민국은 문화 강국, 콘텐츠 강국을 지향한다는 표어가 그 어느 때보다 요란하게 펄럭였던 지난 몇년이다.
그런데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버젓이 돌아다녔단다. 무식하고 천박하고 저열하기가 그지없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예술인 461명이 지난 9일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소송을 낸 예술인들의 심경이 얼마나 황당하고 참담할지는 이심전심이다. 지금이 6·25 직후도 아니고, 참 낯뜨거운 해외 토픽감이다.
한류가 아시아를 시작으로 전세계를 휘저으며 흘러다닐 수 있었던 것은 문화계 인사들의 지칠 줄 모르는 흥과 열정 덕분이었다.
그러한 흥과 열정을 단숨에 냉동시켜 버리는 게 블랙리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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