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연합뉴스) 이우성 기자 = "소액심판은 주로 3천만원 이하 사건인데, 서민은 1년 내내 일해도 못 버는 돈이거든요. 소송 과정에서 배려하고 존중해 그분들이 승복할 수 있는 결정을 내려 '원로법관은 다르다.' 이런 말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최근 대법원 인사에서 '원로법관'으로 지명돼 30년 만에 소액심판 사건을 맡게 된 조병현(62·사법연수원 11기) 판사가 9일 수원지법 안산지원 광명시법원에 첫 출근을 했다.
'원로 법관제'는 법원장 등 법원 고위직을 두루 맡은 경륜 있는 판사가 후배 판사들과 나란히 1심 재판을 전담하게 하는 제도다.
지난 1월 31일 대법원 인사에서 조 판사를 포함해 5명의 '선배 판사'가 원로법관으로 지명돼 1심 재판부로 복귀했다.
이들은 일선 법원에서 소액사건 재판을 전담한다.
서울고법원장, 서울행정법원장 등 법원장만 5번 지낸 조 판사의 1심 재판부 복귀는 2003년 2월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에서 대전고법 부장판사가 된 후 14년 만이다.
1심 소액심판을 맡은 것은 1987년 서울동부지법에서 마지막으로 맡아 손을 뗀 후 30년 만이다.
그는 "소액심판은 일반적으로 좀 작은 사건으로 인식하는데 당사자 입장에서는 3천만원 이하 사건이 있는 사람들의 몇 억 사건보다 더 중요하다"며 "소액심판 사건의 특성상 사건당 재판시간을 짧게 줄 수밖에 없는데 그 점을 극복해야 한다"고 했다.
짧은 시간 안에 당사자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게 들어주고 그분들이 납득하는 결정과 화해와 조정을 권고해야 원로법관의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변호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없었을까.
그는 "2015년 서울고법원장에서 물러날 때 주변 권유도 있고 해서 조금 고민했는데 이번에 원로법관 제의를 받았을 때 망설임이 없었다"고 말했다.
"33년간 재판 해오며 판단하는 역할만 해와 그 길이 변호사보다는 여러 가지로 맞는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정년이 3년밖에 안 남았기도 해 선택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죠. 요즘은 전자소송도 많고 매뉴얼도 다시 익히고 해야 해요. 원로 판사가 재판을 서툴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조 판사는 오는 23일 첫 소액심판을 앞두고 있다.
첫날만 30건이 넘는 소액심판이 예정돼 있는데, 주로 3천만원 이하 소액 민사 사건이다.
30여년 경륜의 원로 법관은 "소송 관계인들을 배려하고 존중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결정을 내리고, 그러면서 법정의 권위가 서는 이런 게 목표죠. 당사자들은 승패가 나면 재판부를 존경하기 쉽지 않겠지만요…"라고 나지막하게 소신을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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