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가축시장 잠정폐쇄 첫날 '소는 안 보이고 한숨만'

입력 2017-02-10 16:03  

[르포] 가축시장 잠정폐쇄 첫날 '소는 안 보이고 한숨만'

(전국종합=연합뉴스) 두 가지 다른 유형이 사상 처음으로 동시 발생함에 따라 지난 9일 오후 구제역 위기 경보가 최고 단계인 '심각' 단계로 격상됐다.

이에 따라 전국 86곳 가축시장이 잠정폐쇄됐다.

잠정폐쇄 첫날인 10일.

당초 이날 장을 열 예정이었던 강원·전북·전남 등 전국 3곳 우시장을 찾았다.




◇ 강원 춘천 가축시장 '까마귀만 악악'

'구제역 확산방지를 위하여 2월 20일까지 잠정 폐쇄합니다.'

10일 오전 11시께 강원 춘천시 신북읍 율문리의 춘천 가축시장 입구에서 춘천철원축협 관계자들이 외부인 출입을 금지하는 안내판을 붙이고 있었다. 그 앞으로는 방역을 위한 소독용 생석회가 두 줄로 뿌려졌다.

평소 오전 11시면 낙찰이 끝나고 성질 급한 새 주인은 송아지를 당기고, 가기 싫은 송아지는 반항하는 모습이 눈에 띌 시간이지만 시장은 썰렁하기만 했다. 소 장수들의 분주한 발걸음은 온데간데없었다. 송아지들의 어미를 찾는 울음소리 대신 '악악'거리는 까마귀 소리가 유난히 크게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밧줄에 꽁꽁 묶여 서로 엉덩이를 밀고 난리를 쳤을 송아지들의 모습 대신 가축시장 입구에는 출입금지 안내판만이 밧줄로 굳게 묶였다. 소 무게를 재기 위해 한 마리씩 지나갈 수 있도록 설치한 유도로 구조물은 강풍에 이따금 흔들렸다.

텅 빈 경매장은 냉기가 맴돌았다. 햇빛 들어오지 않는 우사 안은 배설물이 섞인 질흙이 너저분하게 흐트러져 있었고, 천장에서는 주렁주렁 매달린 고드름이 녹아 물이 한 방울씩 떨어졌다.

춘천 가축시장은 매달 10일과 25일 열린다.

우시장 우사는 1번부터 96번까지 있어 한 번 경매가 열릴 때마다 평균 60∼70마리가 거래되고, 많을 때는 90마리가 넘을 때도 있다.

평소 같으면 조금이라도 질 좋은 송아지를 찾기 위한 소 장수들의 발길로 시끌벅적하고, 소 장수들이 자신이 눈도장 찍어놓은 송아지가 품으로 올까 기대 반 설렘 반으로 기다리는 풍경이 연출됐겠지만, 가축시장 문은 굳게 닫혔다.


◇ 전북 고창 우시장 "구제역 끝나도 이후가 걱정"

"구제역 때문에 난리죠. 뭐 할 말이 있겠어요?"

이날 가축시장이 폐쇄된 전북 고창부안축협 한 관계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고창군 흥덕면 고창부안축협 전자경매 가축시장에선 평균 300∼320마리, 많게는 340마리가 경매에 나오지만, 이날부터 모든 거래가 중단됐다.

평소 같았으면 경매에 나온 송아지 울음소리와 농부들로 시끌벅적했을 이곳도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했다.

축협 관계자는 "구제역이 발생하면 해당 농가는 물론 전국 한우 농가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면서 "구제역 이후 한우 가격이 어떻게 될지 걱정이다"고 말했다.

한우 사육농가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부근에서 한우 농가를 운영한다는 최모(49)씨는 "소를 제때 출하하지 못하면 사룟값 등을 포함해 유지비가 계속 지출돼 피해가 막대하다"라며 "무엇보다 마을 농가에서 구제역이 발병할까 봐 마음을 졸이고 있다"고 불안감을 호소했다.

전북도 내에서는 고창과 같은 가축시장이 7곳 더 있다.

조만간 장날이 찾아오면 다른 시장들도 기약 없는 기다림을 이어가야 할 처지다.


◇ 전남 나주 우시장 "잠정폐쇄 언제까지…"

"소를 제때 못 내다 팔면 사료비 부담 등 손해가 이만저만 아닙니다."

매달 5일의 배수일인 5일, 10일, 15일, 20일, 25일 각각 개장하는 전남 나주시 이창동 나주축산농협 우시장 앞 주차장이 텅텅 비었다.

평소 같았으면 오전 4시 30분부터 뿌연 입김을 내 품는 소와 송아지를 실은 차량이 속속 도착해 함박웃음 등 사람 사는 풍경을 연출하지만, 오늘은 개미 새끼 한 마리 찾아볼 수도 없었다.

우시장 앞 축산용품 판매장에 앞 방역 발판은 사람의 발걸음이 끊겨 꽁꽁 얼어붙었다.

이곳은 평소에는 300∼400마리, 주변 시군 우시장이 열리지 않는 25일에는 500마리가 훌쩍 넘는 소들이 모여드는 전남의 대표 우시장이다.

잠정폐쇄가 시행된 첫날 농민들은 정성껏 키운 소를 팔고 시장 앞 주점에서 막걸릿잔을 기울이는 대신, 방역망 안에 꽁꽁 싸듯 보호해놓은 소들을 보며 각자의 축사에서 먹이를 주며 소주잔을 기울였다.

우시장이 열리진 않지만, 아픈 소에게 먹일 약품을 사러 우시장 앞 축산용품점을 찾은 박병렬(57)씨는 "소 키우는 사람은 소를 팔고 사야 먹고사는데 막막하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소는 하루에 3.5∼10㎏씩 사료를 먹는다"라며 "팔아야 할 소를 하루 팔지 못하면 사룟값에다 왕겨, 물값까지 더해 하루 평균 1만원은 더 들어갑니다"고 말했다.

한 농민은 "육우용 소로 내다 팔기 위해 비육(육류용 소를 높은 등급을 받아 팔기 위해 살찌우는 행위)한 소들은 적기에 못 팔면 등급이 떨어져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나주는 조류인플루엔자의 직격탄을 맞은 데에다 구제역까지 겹쳐 시름의 깊이가 더했다.

우시장 직원들은 문 닫은 시장 밖으로 방역용 차량을 몰고 나가 구제역 방역 작업하느라 구슬땀을 흘렸다.

현장에서 만난 한 축협 직원은 "우시장을 못 여는 것도 문제지만, 구제역으로 소고기 소비가 줄어 가격마저 하락할 우려가 있다"라며 "우시장이 개장한다고 해도 농민들의 걱정이 태산이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김동철 박영서 박철홍 기자)

pch80@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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