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연합뉴스) 김선호 기자 = 지난해 12월 30일 부산 일본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은 우여곡절 끝에 세워졌다.
한일 위안부 합의 1주년이었던 지난해 12월 28일 시민단체가 기습 설치한 뒤 강제 철거로 방치됐던 소녀상은 국민적 공분에 놀란 구청이 설치를 묵인하면서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건립됐다.
일본 공관 앞 설치에 반발해 소녀상 이전을 요구하는 일본 정부의 목소리와 별개로 평화의 소녀상은 부산의 '핫플레이스'가 됐다.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많은 시민이 성지 순례하듯 찾아와 인증샷을 찍었고 목도리나 장갑 등 방한용품을 남기며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와 소녀상의 의미를 설명하는 역사교육의 장이 되는가 하면 한일 위안부 합의의 부당함을 호소하고 일본 정부의 사죄를 촉구하는 상징적 장소가 됐다.
문재인, 안희정, 이재명 등 민주당 대선 후보군은 물론이고 부산을 방문하는 정치인의 필수 코스가 됐다.
애초 소녀상 설치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던 박삼석 동구청장은 "내 임기 중에 이전이나 철거는 없다"며 "지자체가 나서서 관리하겠다"고 밝히면서 소녀상 입지는 확고해지는 듯했다.
그런 평화의 소녀상이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설치 후 40여 일이 지난 지금 소녀상 주변에는 불법 부착물 전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녀상 설치 초기부터 'LOVE JAPAN' 등의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인 30대 남성 최모씨는 지난달부터 소녀상 주변에 자신의 주장을 담은 유인물을 붙였다.
한 남성이 붙인 이 부착물에는 일본을 옹호하고 소녀상 철거를 주장하는 내용이 담겼다.
화가 난 시민이 이를 떼자 이 남성이 다시 유인물을 붙이는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후 소녀상 반대 문구 위에 지지 문구, 그 위에 다시 반대 문구를 덧바르는 상황이 반복되는 등 갈등이 커졌다.
이 과정에서 유인물을 뗀 시민 하모(41)씨는 재물손괴 혐의로 조사를 받았지만 경찰은 부착물이 불법이고 피해가 경미한 점, 정치적 의도가 없는 점을 고려해 입건하지 않았다.
최씨는 자신의 유인물을 뗀 여성을 경찰에 고소한 뒤 여성이 사과하자 고소를 취하하기도 했다.
현재 소녀상 주변에는 소녀상을 건립한 시민단체가 붙인 선전물과 소녀상 철거를 주장하는 남성이 붙인 선전물이 난립해 있다.
이 선전물은 엄밀히 말해 구청의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부착물이다.
이 때문에 최씨는 "소녀상에 대한 반대 의견을 말할 권리도 존중돼야 한다"며 "부착물을 떼려면 시민단체가 붙인 것도 함께 떼야 하며 근본적으로 소녀상도 제대로 된 허가를 받지 않고 설치된 이상 철거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애초 소녀상을 적극적으로 관리하겠다던 동구청은 최씨의 말처럼 형평성을 내세우며 시민단체와 최씨 모두에게 선전물 자진철거를 요구한 채 사실상 소녀상 관리에 뒷짐을 지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부산교통공사가 소녀상 바로 옆 지하철 엘리베이터 외벽 유리에 붙은 선전물을 오는 15일까지 스스로 떼지 않으면 철거하겠다는 알림문을 게시했지만 국민감정을 고려해 실제로 강제 철거하는 것에는 부담을 느끼고 있다.
소녀상을 세우고 지킴이 활동을 벌이는 부산겨레하나 측은 "최씨의 유인물이 국민의 힘으로 세운 소녀상의 의미를 깎아내리거나 퇴색시키고 있다"며 "동구청이 방문객 편의와 관람을 위해 지정 게시대 등을 만들고 주변 환경을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재 소녀상 주변에서 발생하는 부착물 공방은 보호와 관리에 나서겠다고 한 구청장이 조례나 법적 근거를 마련하지 않아 생긴 불필요한 갈등"이라며 "관리 조례를 만든 서울 종로구청처럼 구청장이 책임지고 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소녀상은 위안부 문제가 왜 해결되지 않았는지, 과거 우리 여성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환기하는 목적으로 세워졌다"며 "이런 의미를 무시한 채 일본 정부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조차 받지 못한 채 한스러운 세월을 산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극우·반민족적인 주장까지 관용돼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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