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요즘 바람 잘 날이 없는 대한민국에 다른 나라의 부러운 뉴스가 하나 전해졌다.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 그룹인 페이스북의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에 관한 소식이다. 미국 CNBC 등에 따르면 저커버그 부부가 창립한 '챈 저커버그 바이오허브'는 스탠퍼드 등 미국 유명대학 연구자 47명에게 향후 5년 간 1인당 최고 150만 달러(17억원), 도합 5천만 달러(한화 573억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손이 크기로 유명한 미국 보건연구원(NIH)과 맞먹는 수준이라고 한다. 지원 분야에는 컴퓨터과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이 망라됐다.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전혀 조건을 달지 않았다는 것이다. 연구 분야와 주제를 제한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실패해도 일절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한다. 창의성을 집약해 성공 신화를 일궈낸 '저커버그 방식'의 또 다른 도전인 셈이다. 작년 9월 저커버그는, 금세기 말까지 인류의 모든 질병을 예방·치료·통제하는 것을 목표로 향후 10년 간 30억 달러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저커버그의 거금 쾌척이 더욱 부럽게 다가오는 것은 국내의 열악한 기초과학 연구 환경과 극명히 대조되기 때문이다. 연구자 공모 때부터 주제, 기간, 방식 등을 까다롭게 제한하고, 중간 점검에서 맘에 들지 않으면 지원을 끊거나 나간 돈까지 회수하는 게 우리한테 익숙한 현실이다. 사정이 이러니 애초부터 연구 성과에는 관심이 없고 정부 지원금을 적당히 나눠먹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고 한다. 이렇게 탕진하는 정부 예산은 가히 천문학적인 규모다. 지난해에도 정부 부설 또는 대학 부설 연구소 등이 신청한 연구과제 5만4천400여 건에 총 18조8천700억원이 나갔다. 이는 전년에 비해 7.0% 증가한 것이다.
정부 지원금을 제 주머니 돈처럼 여기는 일부 연구자들의 '모럴헤저드'도 심각하다. 감사원이 2008~2012년 정부 연구개발(R&D) 예산 내역을 감사한 결과 모두 548건의 비리가 적발됐다. 이 중 70%가 넘는 387건이 연구비와 관련된 것이었다. 작년 12월 서울북부지법에서 사기 등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모 대학교수의 경우 8년간 허위 거래명세서 등을 대학 산학협력단에 제출해 6억2천만원을 부정청구한 뒤 1억5천만원을 착복했다. '최순실 게이트'로 비난의 도마 위에 오른 이화여대는 지난해 교육부의 주요 재정지원 사업 9건 중 8건을 따냈다. 이를 통해 끌어온 돈이 180억원에 달한다. 특히 최 씨 딸 정유라에게 학점 특혜를 준 교수는 1년 간 연구비 55억원을 받았다. '정부 지원 연구비는 먼저 먹는 게 임자'라는 말이 대학가에서 나도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요즘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 공무원이라고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7월 말 현재 취업시험을 준비 중인 청년층(15세~29세) 65만명 중 40%에 가까운 25만7천명이 이른바 '공시'(공무원시험)생이었다고 한다. 물론 공무원이 되는 것이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 청년 10명 중 4명꼴이 안정된 직장에만 목을 매는 현실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젊은이들이 도전할 만한 꿈 하나 없이 안주할 곳만 찾는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 정부와 재계부터 우리 현실을 되돌아보고 진지한 성찰을 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인 청년 취업난도 그런 각성 없이는 해법을 찾기 어렵다. 기본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봐야 문제가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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