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명 달라붙어 겨우 수술대 눕혀…채혈하다 갈비뼈에 금 가기도
업계에서 '극한직업'으로 불리는 경주마 병원 관찰기
(부산=연합뉴스) 차근호 기자 = 몸무게가 500㎏ 조금 못 미치는 경주마 '헤바'가 진정제를 맞은 뒤 몸을 잘 가누지 못하자 수술실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헤바'가 확 넘어져 다치지 않게 설치해 둔 철문을 마방 직원 4명이 밧줄을 걸어 서서히 당기자, 문이 열리는 속도에 맞춰 헤바도 서서히 옆으로 눕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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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진 수의사는 헤바의 혀를 빼내 기도에 말려들어 가지 않도록 한 뒤 능숙한 솜씨로 입속에 관을 꽂아 넣었다.
그사이 헤바의 다리는 하늘로 들어 올려져 천장 레일에 붙은 호이스트(갈고리 형태로 들어 올리는 장치)에 묶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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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웅∼' 육중한 소리를 내는 호이스트에 헤바가 들어 올려지며 수술대로 다가가자 수술방 여기저기서 다급한 음성이 터졌다.
"거기, 거기 조심해", "여기, 침대 라인에 등을 맞춰", "저기 더 밀고"
긴박한 지시가 몇 차례 더 오가고 수의사 4명과 마방 직원 3명 등 모두 7명의 얼굴이 땀으로 번들거릴 때쯤 헤바가 겨우 침대에 똑바로 눕혀졌다.
기자는 지난 9일 수의사 업계에서도 대표적인 '3D직종' 혹은 '극한직업'으로 불린다는 한국마사회 렛츠런파크부산경남 경주마 병원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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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마 수술대는 부드러운 공기 매트로 만들어져 있었다.
딱딱한 재질 위에 말을 눕히면 수술 시간 동안 근육에 피가 통하지 않아 근육에 손상(근병증)이 온다고 서 수의사는 설명했다.
경주마 병원에서 이런 큰 수술은 보통 한 달에 두 번 정도 이뤄진다.
1천 마리의 경주마가 있는 렛츠런파크에서 경기나 훈련중 부상은 빈번하게 발생한다.
1천 미터를 순수 근육의 힘으로만 60㎞의 속도로 달려 1분 만에 주파해야 경주마로 인정을 받는다. 얼마나 힘이 드는지 경주 한 번에 몸무게가 20㎏정도 빠진다. 특히 기수를 태운 말의 몸에는 4t 가량의 큰 충격이 가해지기 때문에 말 뼈에 금이 가거나 골절되는 경우가 잦다고 한다.
이날 수술을 받은 '헤바'는 훈련 중 왼쪽 다리 발목뼈에 금이 가 '나사 고정술'이라고 불리는 수술을 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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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은 숨 막힐 듯 조용한 분위기에서 이뤄졌다.
경주마의 폐로 마취 가스를 공급하는 흡입마취기의 쉭쉭거리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수술은 당초 예상한 것보다 길어져 헤바가 마취를 깨고 회복하는 데까지 모두 3시간이나 소요됐다.
헤바를 조련하는 권승주 조교사는 "헤바가 최근 기량을 발휘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는데 부상을 입어 걱정"이라면서 "한번 골절되면 이전 기량을 못 찾는 경우가 많아 앞으로 더 신경 써 관리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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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헤바'외에도 유명 경주마인 '킹아이스'가 동물병원을 찾았다.
그랑프리 대상경주를 두 번이나 석권한 암말로 벌어들인 상금만 14억원에 달한다.
킹아이스는 한 달 전 골절 수술을 받은 뒤 이날 뼈가 잘 붙도록 줄기세포 주사를 맞으려고 왔다.
줄기세포 주사는 서 수의사와 임어진 수의사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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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수의사는 막내 수의사로 궂은일을 자청해 도맡아 처리하는 착실한 성격으로 선배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서 수의사는 동물병원의 홍일점이다.
서 수의사는 특히 12년 동안 근무하면서 1만5천 회가 넘는 말 시술(수술 포함)을 맡은 베테랑이다.
경주마 항문을 통해 직장검사를 하면서도 냄새 때문에 인상 쓰기보다 "풀냄새가 나서 좋다"고 말하는 '말 마니아'이기도 하다.
동물병원 김병현 팀장이 "보통 남자보다 씩씩하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로 활력이 넘친다.
몸무게 10배의 말을 다루다 보면 위험한 순간도 한두 번이 아니다.
서 수의사는 4년 차인 지난 2008년 결혼을 얼마 안 남겨두고 경주마의 채혈을 하다가 말의 몸통에 부딪혀 갈비뼈에 금이 가기도 했다.
활기찬 동물병원이 숙연해지는 순간이 있다. 말을 안락사해야 할 때다.
기자가 방문한 날은 다행히 그런 일이 없었지만 더러 장기가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손상돼 찾아온 말은 안락사를 권유한다고 한다.
김 팀장은 "경주마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슬픈 순간도, 힘든 일도 많지만 특별한 자부심으로 일하고 있다"면서 "다시 태어나도 경주마 병원 수의사를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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