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전쟁] 총성 울리는데 손발 묶인 한국 외환당국

입력 2017-02-12 06:35   수정 2017-02-12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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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전쟁] 총성 울리는데 손발 묶인 한국 외환당국

환율 널뛰기 심해져도 조작국 지정 우려로 속수무책

원화 강세 전환에 회복 기미 보이는 수출 악영향 우려

(서울=연합뉴스) 김지훈 기자 = "새해 들어 불과 한 달여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기존의 세계 무역체계에 큰 변화를 가져올 만한 상황이 전개되면서 앞으로의 수출전망을 낙관할 수만은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8일 국내 경제·통상 전문가들을 초청해 개최한 경제동향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지칭하는 '브렉시트'와 미국의 보호무역 정책 기조가 우려했던 방향으로 나타나면서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의 올해 경제에 악영향이 예상된다는 우려를 표명한 것이다.

애초 한은은 올해 소비와 내수가 부진해도 수출에 의존해 회복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봤다.

미국 등 선진국 경제가 성장세를 보이고 국제유가가 반등하면서 부진했던 글로벌 교역도 살아나면 수출회복이 내수부진을 상쇄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불과 한 달여 만에 이런 기대는 정반대의 상황을 걱정해야 하는 우려로 바뀌었다.

이 총재는 "우리 수출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대에 이르고 있다"면서 "지금처럼 심리위축으로 민간소비가 위축돼있는 상황에서는 수출마저 부진하면 곧바로 성장부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걱정했다.





상황이 이렇게 급변한 원인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로 촉발된 글로벌 환율전쟁에 있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이 자국 산업보호와 수출 증진을 위해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는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전 "달러화가 너무 강세여서 미국 기업들이 경쟁할 수가 없다"며 '달러 강세'를 용인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취임 직후엔 "중국과 일본이 수년간 환율을 조작했고 우리는 얼간이들처럼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미국으로부터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있는 중국이나 일본, 독일 등은 이를 막기 위해 경제·외교전을 펼치며 자국 이익 보호에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속수무책이다.

대통령 탄핵 국면 등 정치 불안으로 대미 통상외교가 실종상태인 데다 원/달러 환율이 급등락해도 환율조작국 지정 우려 때문에 외환 당국이 쏠림을 막는 '미세조정(스무딩 오퍼레이션)'이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미국 재무부는 오는 4월 환율보고서를 통해 환율조작국을 지정할 예정인데 한국은 작년 '관찰대상국'으로 분류됐기 때문에 올해 조작국으로 지정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환율조작국은 연간 200억 달러 이상의 대미 무역흑자, 국내총생산(GDP) 대비 3%를 초과한 경상수지 흑자, GDP 대비 2% 초과의 달러 매수 개입 등 3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하면 지정된다.

우리나라는 대미 무역흑자나 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규모 등 2가지 조건에 해당하는 상태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외환 당국이 변동성을 줄이는 차원에서 미세조정을 해왔지만 최근엔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우려가 있어 시장 개입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이런 점이 최근 원/달러 환율 급등락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원/달러 환율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경기부양 정책에 대한 기대로 작년 12월 28일 1,210.50원(종가기준)까지 급등했었다.

그러나 연초부터 트럼프 대통령이 달러 강세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쏟아내자 하락세로 돌아서 지난 6일 1,137.90원까지 급락했다.

지난 1월 한 달간 원화 가치는 일본 엔에 대해 1.1% 올랐고 위안에 대해서는 2.2% 상승했지만 달러에 대해서는 3.9%나 급등했다.

미국 통상정책에 대한 금융시장의 우려와 불안감이 커지면서 원/달러 환율은 하루에도 10원 이상 오르락내리락하는 널뛰기를 거듭하고 있다.





지난달 원/달러 환율은 하루에도 평균 7.7원(0.65%)이 급등락하는 널뛰기 장세를 보였고 전날 종가와 비교한 변동 폭도 평균 7.1원에 달했다.

이렇게 환율이 방향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급변동하면서 주요 수출기업들은 수출경쟁력에 타격을 받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장기간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가던 수출은 작년 11월 증가세로 돌아선 뒤 최근까지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는데 원/달러 환율의 하락은 이런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공산이 크다.

환율이 10원 하락하면 국내 완성차 5사의 연간 수출 매출액이 약 4천억원 감소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작년 하반기부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을 예상하고 거주자 외화예금에 가입하며 달러 투자에 나섰던 투자자들도 손실을 봤을 것으로 우려된다.

하나금융투자 김두언 이코노미스트는 "국내 가계부채를 감안하면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또한 마땅치 않아 원화 강세에 대한 거시적인 대응력이 떨어졌다"면서 "시기적으로 트럼프발(發) 보호무역주의가 환율조작국 지정으로 가시화하는 과정에서 시장의 심리적인 부담도 크다"고 말했다.

hoonk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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