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공부하러 한국왔죠"…동국대 불교대 수석졸업 네팔인 스님

입력 2017-02-12 08:25  

"불교 공부하러 한국왔죠"…동국대 불교대 수석졸업 네팔인 스님

크리스나씨…내달 구족계 받고 서울대 인류학 석사과정 들어가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이승환 기자 = "처음엔 한국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어요. 하지만 고정된 사물이 없으니 물질에 집착하면 안 된다는 불교의 뜻을 생각하며 먹다 보니 한국 음식이 맛있게 느껴졌습니다."

다부진 얼굴이지만 밝은 표정을 한 네팔인 크리스나(34)씨는 12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한국과의 인연과 불교와의 인연을 이렇게 설명했다. 유창한 한국어였다.

그는 여러 한국인을 제치고 이달 동국대 불교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다.




네팔은 석가모니의 탄생지 룸비니가 위치한 나라지만, 전체 인구의 80%는 힌두교를 믿는다. 불교도는 10% 안팎에 불과하다.

크리스나씨의 부모님도 힌두교도이고, 본인도 힌두교 경전을 따로 공부할 정도로 힌두교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불변하는 영혼인 아트만(Atman)이 있다는 것이 좀처럼 믿어지지 않았다.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은 믿기 어려웠다.

고등학교 교사로 영어를 가르치던 그는 석가모니의 생애를 다룬 책을 읽고서 불교에 호기심이 생겼다. 고정된 영혼도 신도 없고, 모든 것이 무상(無常·항상 같은 것이 없음)하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마침 과거에 요가를 하며 만난 한국인 불자가 떠올랐다. 그와의 만남이 인연이 돼 한국에서 불교를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었다.

2011년 한국에 온 그는 사미계(沙彌戒·출가는 했어도 아직 스님이 되지 않은 '사미'들이 지켜야 할 계율)를 받고 출가했다. 자재 스님이라는 법명도 받았다.

내친김에 2013년 외국인 전형으로 동국대 불교대학에 불교학전공으로 입학했다. 재학 스님들의 기숙사인 백상원에서 생활했다.

자재 스님은 "학교생활은 도반(道伴·동료) 스님들과 어울려 다니며 즐겁게 보냈다"며 "같이 당번 조를 짜 요리도 함께, 공부도 함께, 수행도 함께, 토론도 함께였다"고 4년을 회상했다.

어떤 도반은 책을, 어떤 도반은 참선을 좋아하는 등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흥미로웠다고 한다.

전문용어와 한자가 많아 어려운 점도 있었다. 인터넷 검색을 위한 스마트폰을 끼고 살았다. 길거리 간판에서 모르는 내용이 있으면 일일이 검색했다. 친한 한국인 도반들도 많이 귀찮게 했다.

수석졸업 비결을 묻자 책임감 있게 숙제하고 책을 많이 읽었다는 '모범답안'을 내놓았다. 원래 호기심이 많고 공부를 좋아한다고도 설명했다.

그는 특히 물질에 대한 집착을 많이 없앴다고 말했다. 네팔 음식만 먹던 그가 한국 음식을 거부감 없이 먹게 된 것도 그 덕분이었다. 도반 스님들이 사찰이나 사회에서 남을 돕는 것을 보고도 물질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

그러나 대학에 다니려면 어쩔 수 없이 물질은 필요했다. 등록금만 해도 만만치 않았다.

혈혈단신 한국에 온 그가 대학에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재단과 은사의 도움이 컸다. 대학 등록금 70%는 재단인 조계종이 지원해줬다. 나머지 학비 30%와 생활비는 은사인 광주 무등산 문빈정사 주지 법선 스님이 모두 대줬다.

그는 "지금까지도 도움을 받고 있어 은사를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




아직 사미인 자재 스님은 다음 달에 구족계(具足戒·비구와 비구니가 지켜야 할 계율)를 받고 정식 스님(비구)이 된다. 더 넓게 공부하고 싶어 서울대 인류학과 석사과정에도 들어간다.

그는 "종교인이 자신의 종교를 설명하면 비종교인은 '이 사람은 믿으니까 이렇게 말한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비종교인이 납득할 불교 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시각의 폭을 넓히고자 인류학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 이후에 무엇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가능하다면 옥스퍼드나 하버드에서 박사 공부를 하고 싶다"며 "호기심이 많은 성격을 살려 학문적으로 불교 활동을 하고 싶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새로운 학문이 그에게는 첫 만행(萬行)인 셈이다.

comm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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