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세계 여러 나라들이 '가짜 뉴스(Fake News)'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가짜 뉴스는 기본적으로 언론사가 생산한 뉴스가 아니다. 외형상 언론사의 보도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실체는 의도적으로 꾸며진 허위정보이다. 가짜 뉴스는 작년 6월 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나 11월의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미 대선 때는 "교황이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한다", "힐러리 클린턴의 e메일 유출을 조사하던 미국 연방수사국(FBI) 요원이 아내를 살해한 뒤 자살했다" 같은 가짜 뉴스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유포됐다. 클린턴 민주당 후보에 부정적인 가짜 뉴스가 상대적으로 더 많았다. 러시아가 조직적인 해킹으로 대선에 개입해 트럼프 당선을 도왔다는 말도 나왔다. 작년 하반기 독일에서는 "메르켈 총리가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히틀러의 딸"이라는 가짜 뉴스도 나돌았다. 작년 12월 '파키스탄이 시리아에 지상군을 파견하면 이스라엘이 핵공격을 할 것"이라는 가짜 뉴스에 나돌자 카와자 아시프 파키스탄 국방장관은 "파키스탄도 핵보유국이란 사실을 이스라엘이 잊은 것 같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가짜 뉴스는 국내에서도 이미 위협적인 존재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이달 초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인격살해에 가까운 음해와 각종 가짜 뉴스'를 비판했다. '퇴주잔' 논란이 그가 꼽은 대표 사례다. 성묘하는 장면을 악의적으로 편집한 동영상이 나돌아 자신이 조롱거리가 됐다는 것이다. 가짜 뉴스는 대통령 탄핵을 놓고 찬반 대립이 격화되면서 더 기승을 부렸다. 최근 '태극기 집회'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사실들을 담은 신문 형식의 유인물이 대량 배포됐다. 정치권은 불리한 가짜 뉴스의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모니터링을 강화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가동했고, 경찰도 전담반을 꾸렸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13일 "악의를 갖고 반복해서 가짜 뉴스를 온라인에 올리면 수사 대상으로 볼 것"이라고 경고했다.
가짜 뉴스는 유언비어와 그 속성이 비슷하다. 가짜 뉴스든 유언비어든 인터넷의 발달과 확산으로 파급력은 훨씬 커졌다. 인터넷 환경에서 정보 소비자들의 성향 변화도 가짜 뉴스 확산을 부추기고 있다. 자신의 생각이나 취향에 맞으면 정보의 진위에 상관없이 무조건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해진 것이다. 지난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조의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도 인터넷 공간에 나도는 허위정보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영장 기각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대학 시절 삼성 장학금을 받고 아들은 삼성 취업을 확약받았다' 등 조 부장판사를 비방하는 내용의 허위정보가 급속히 퍼졌다. 법원은 "조 판사한테는 아들이 없다"면서 유감을 표명했다.
언론 매체에 대한 신뢰도 하락도 가짜 뉴스 횡행의 한 요인으로 꼽힌다. 갤럽이 대선 두 달 전인 작년 9월 7∼11일 미국 내에서 설문조사한 결과, '언론이 뉴스를 공정하게 전달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32%에 그쳤다. 1972년 시작된 갤럽의 정례 조사에서 역대 최저치다. 과거 한국의 군사독재 시절 유언비어가 많이 나돈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최근 한국인의 언론 신뢰도는 세계 최하위권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해 2월 영국 옥스퍼드대학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와 함께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드러난 사실이다. 이 조사는 세계 26개국, 5만3천330명을 대상으로 했는데 한국인의 언론 신뢰도는 5점 만점에 2.89점으로 23위였다. 핀란드(3.57), 포르투갈(3.46), 캐나다(3.41), 독일(3.32), 일본(3.19) 등과 비교해 현격히 낮았고, 우리 아래에는 프랑스(2.86), 미국(2.85), 그리스(2.65) 세 나라뿐이었다.
국내에선 조기 대선 국면이 달아오르고 있다. 가짜 뉴스 등 유언비어 차단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가짜 뉴스 같은 허위 정보는 일단 퍼지면 피해를 보전하기 어렵다. 가짜 뉴스가 유권자의 올바른 선택을 저해하지 못하도록 정부가 각별히 노력해야 한다. 가짜 뉴스의 주요 유통채널인 SNS나 포털의 자체 정화 노력도 필요하다. 페이스북은 미 대선 과정에서 플랫폼 업자의 책임론이 불거지자 작년 12월 허위정보 검색 시스템을 개선하기로 했다. 뉴스 소비자들이 가짜 뉴스에 속지 않도록 학교 등의 미디어 수용자 교육을 강화하고, SNS나 포털 등 뉴스 플랫폼의 법적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돼야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언론이 제 자리를 찾아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신뢰받는 언론이 늘어날수록 유언비어가 날뛸 공간은 좁아질 것이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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