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다시 불려 나갔다. 1차 소환 때와 같이 뇌물공여 혐의를 받는 피의자 신분이다. 이 부회장은 13일 오전 특검에 출두하면서 "모든 진실을 성실히 성심껏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 "국민께 송구스럽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인 1차 소환 때와는 미묘하지만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특검은 한달여 전인 1월 12일 이 부회장을 불러 22시간 철야조사한 뒤 사흘 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 부회장에 대한 피의자 심문을 거쳐 영장을 기각했다. 주요혐의사실에 대한 검찰의 소명이 부족하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그날 이 부회장은 영장 기각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수의를 입고 구치소 독방에서 밤 새워 대기하다 15시간 만에 풀려났다.
이번에도 쟁점은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 최순실 씨에게 삼성이 부정한 청탁을 했는지, 그리고 대가성이 있는 돈을 줬는지 여부이다. 다만 1차 소환 때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맞춰졌던 수사의 초점은 합병 이후 순환출자 고리로 옮겨진 것 같다. 합병 과정에서 지나치게 강화된 순환출자 고리를 관련 법규에 맞춰 느슨하게 만들려면 삼성SDI가 갖고 있던 삼성물산 주식을 처분해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공정거래위가 의무처분 물량을 1천만주로 결정했다가 청와대 뜻에 따라 절반으로 줄여줬다는 것이 의혹의 핵심이다. 특검은 청와대와 삼성 사이에서 합병 시점과 합병 이후 특혜를 묶은 '패키지' 거래가 이뤄진 것으로 보는 듯하다. 1차 소환조사 때 특검은 금품의 대가성 입증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보름 후에 이뤄졌다는 사실이 주된 근거였다. 합병이 성사되고 2주 넘게 지나 대통령을 만났는데 무슨 로비를 했겠느냐는 것이 삼성 측 논리였다. 특검이 공정위의 의무처분 주식 축소 배경을 의심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인 듯하다. 공정위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으로 강화된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해야 한다면서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것은 2015년 12월로,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 후 4개월 이상 지난 시점이다.
특검은 지난달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을 청구하면서 '경제보다 정의'라는 말을 했다. 이 부회장 구속에 따른 경제적 여파보다 사법적 정의 실현을 더 중요하게 봤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면서 특검은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등 삼성 수뇌부 임원들은 경영 공백을 고려해 불구속수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특검은 이 부회장을 재소환하면서 "(다른 임원들에 대한) 불구속 방침은 모두 원점에서 새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들 임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이 부회장을 구속수사해야 하는 논리를 강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특검이 이렇게까지 이 부회장의 구속에 매달리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유감이다. 단순히 '사법적 정의'를 실현하려고 한다면 구속수사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구속하면 정의 실현이고 불구속하면 그렇지 않다는 말인가. 거듭 강조하지만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 무죄추정과 불구속수사는 형사소추의 기본 원칙이다. 마치 구속수사가 검찰만의 배타적 징벌수단처럼 비춰지는 것은 좋지 않다. '도주와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상투적 구속수사 사유를 이 부회장한테 적용하는 것도 부자연스럽다. 혐의를 부인하니까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식이라면 누구도 피해가기 어렵다.
특검의 1차 수사기간은 2월 말까지다. 연장되지 않으면 이제 보름 남았다. 특검도 이 부회장에 대한 처리 방침을 신속히 결정할 듯하다. 특검 주변에선 15일 영장 청구, 17일 실질심사 얘기가 조심스럽게 나오는 것 같다. 특검 입장에선 상당한 모험일 수 있다. 만약 영장을 청구했다가 다시 기각되면 특검수사를 지탱해온 큰 축이 무너질 수 있다. 각자 회장의 사면을 바라고 최순실 씨 측에 돈을 준 것으로 의심받는 SK, CJ 등은 아직 조사도 시작하지 않았다. 이렇게 수사의 형평을 깨면 '삼성특검' 아니냐는 여론이 더 거세질 수 있다. 이 부회장에 대한 사법처리 수위를 좀 더 신중히 따져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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