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근 "옛 조직으로 새 물건 만드는 산업현장…유례없는 모순"

입력 2017-02-14 14:24  

송호근 "옛 조직으로 새 물건 만드는 산업현장…유례없는 모순"

현대차 연구한 '가 보지 않은 길' 출간…"노동자의 사회 참여만이 해법"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현대자동차가 있는 울산은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둔 산업도시입니다. 그런데 내부를 들여다보면 유례가 없는 엄청난 모순으로 가득 차 있어요. 우리가 어떤 길에서 헤매고 있는가를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노동사회학을 전공한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현대자동차의 성장 동력과 한계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한국경제의 현주소를 진단한 책 '가 보지 않은 길'(나남 펴냄)을 출간했다.

14일 종로구에서 열린 출간 기념 간담회에서 그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재판과 대선 정국으로 권력 사냥꾼이 판치고 있다"면서 국민이 여러 문제로 곪아버린 산업 현장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책을 쓰기 위해 현대자동차 관계자 50여 명을 만났다는 송 교수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생산 시스템을 '기술주도적 포디즘'으로 규정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단순 육체노동이 결합한 형태라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이러한 체제로 버텨왔지만, 제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밀려오면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이 '기술주도적 포디즘'이라는 모순적 체제에 봉착한 이유를 노사 간의 극단적 충돌에서 찾았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1999년 대량해고 사태를 겪으면서 작업장의 주도권이 경영자에서 노동조합으로 완전히 넘어갔고, 노조는 사측의 주요 결정에 완강하게 저항하고 사측은 충돌을 회피하면서 배타적이고 기형적인 시스템이 완성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닥칠 때까지 현대자동차의 사측은 무엇을 한 것일까.

송 교수는 "지금 경영자가 된 사람들은 1980년대 일을 시작해서 여전히 열정과 협동심, 소명의식을 외치지만 작업장은 이미 구조가 바뀌었다"며 "노조와 대화할 능력을 잃은 사측은 공장 노동자들이 도태되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송 교수는 현대자동차의 경영자보다는 울산공장 노조에 대해 날 선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노조가 작업장의 규율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어서 관리자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며 "이들은 계급간 연대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내부자 연대만 강화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울산공장 노조의 관심사는 더 많은 보상, 더 적은 근로시간, 더 긴 정년밖에 없다"면서 "공장에서는 단순 노동자지만 밖에서는 중산층인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더욱더 작업장 내부 문제에만 집중했다"고 분석했다.

노조가 사회와 단절된 채 더 좋은 노동조건만을 고집했으나,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생산성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울산공장 노동자들이 지금 받는 보수만큼 생산에 기여했느냐,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며 "외국에 있는 공장과 아산, 전주에 있는 공장의 생산성을 편취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러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현실에 안타까워하면서도 노조가 이미 철옹성이 된 탓에 극심한 불황이 찾아오거나 자동차 생산 패러다임의 급격한 변환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정치권은 손을 대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경제도, 기업도 모두 사회조직입니다. 그런데 현대자동차는 옛날 조직으로 새로운 물건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격차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가 관건입니다. 국가는 능력을 잃었고 기업과 시민사회가 나서야 합니다."

송 교수는 문제의 해법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노동자를 뜻하는 '기업시민'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노동자들이 노조 내부의 동호회가 아니라 외부의 시민단체에 가입해 활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일반 시민과 이야기하면서 그들이 현대자동차에 대해 생각하고 평가하는 바를 안으로 주입해야 한다"면서 "이는 비단 현대자동차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대기업에 종사하는 모든 직원이 가져야 할 태도"라고 강조했다.

이어 "과거에는 현대자동차에 이사 대우를 받는 '기능장'이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며 "생산직도 승진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경제에도 낙관적인 측면은 있습니다. 우리는 위기에 처하면 정신을 번쩍 차리잖아요. 한국인에게는 열정에 대한 그리움, 근원을 알 수 없는 복원력은 있는 것 같습니다."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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