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번뇌 일거든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보세요"

입력 2017-02-15 08:00  

"마음에 번뇌 일거든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보세요"

'아무도 너를 묶지 않았다' 펴낸 월호 스님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어느 날 도신 스님이 승찬 스님에게 '해탈(解脫)하는 법을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승찬 스님이 '누가 너를 묶었느냐?'고 물었습니다. 도신 스님이 '아무도 묶지 않았다'고 하자, 승찬 스님이 되묻습니다. '그렇다면 무슨 해탈을 구하는가?'"

14일 서울 중구 행불선원에서 만난 월호(月瑚·61) 스님은 중국 선종의 제3조(祖) 승찬(僧璨·?∼606) 대사와 제4조 도신(道信·580∼651) 대사가 주고받은 선문답을 소개하며 말문을 열었다.

스님은 최근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가'란 주제를 다룬 에세이집 '아무도 너를 묶지 않았다'(쌤앤파커스)를 펴냈다.

"해탈이라는 것이 풀어서 벗어난다는 뜻인데 본래 아무도 묶지 않았다는 것이에요. 아무도 나를 묶지 않았건만 스스로 묶여 있는 것이니 자승자박(自繩自縛)인 셈이죠."

이어 스님은 "우리가 번뇌를 움켜쥐고서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고통에 사로잡혀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라며 "번뇌는 본래 실체가 없고 공허하므로 관찰하면 눈 녹듯 사라지기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실체가 없는 악몽도 꿈을 꿀 때면 찜찜한 기분이 남듯이 현상적인 번뇌를 무시할 순 없다고 스님은 덧붙였다.

그러면서 스님은 "현상적인 번뇌를 대면 관찰로 다뤄야 한다"며 "불교 수행에서 관찰법이란, 나를 객관화해서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고 설명했다. 이를테면 근심이 닥쳐올 때 자신을 타자화시켜 '아, 아무개가 떨고 있구나'라는 식으로 강 건너 불구경하듯 관찰하라는 것이다.

월호 스님은 "제대로 관찰할 수 있어야 마음도 다스릴 수도 있다"면서 "관찰을 통해 보는 '근심에 사로잡힌 나'와 '그런 나를 지켜보는 나'가 분리가 되는 것만으로도 근심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스님은 이런 관찰법을, 초기 불교의 사념처(四念處)를 응용한 수행이라고 소개했다. 몸에 대해 몸을 보고, 느낌에 대해 느낌을 보고, 마음에 대해 마음을 보고, 법에 대해 법을 봐야만 무아법(無我法)에 밝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스님은 아울러 현상으로서의 번뇌를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 되레 "스트레스가 없는 날은 공치는 날"이라며 "스트레스가 있어야 관찰할 거리가 생기고 마음공부에 진전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난초도 적당한 스트레스를 받아야 꽃을 피우는 법"이라고 말했다.

"모든 상황이 좋기만 하면 난초는 꽃 피울 생각을 하지 않아요. 오히려 어려운 상황에 봉착해야 후손을 남기기 위해 꽃을 피우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인간도 스트레스가 있어야 깨달음의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금수저·흙수저',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된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행복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스님은 그럴 때일수록 외부조건에 흔들리지 않는 행복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흔히 '뭐 때문에 불행하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그것은 연(緣)일 뿐이고 내 마음이 인(因)입니다. 외부에 행복의 조건을 맞추면 끌려다닐 뿐이에요."

스님은 또 "인과를 믿는다는 것은 곧 나를 믿는 것"이라며 "나야말로 내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굳게 믿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나의 행복과 불행이 다른 사람에게 좌우된다면 어떨까요? 늘 구걸하는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집안에 보배를 두고, 밖에서 구걸하고 다니는 셈이지요."

월호 스님은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후 직장생활을 하다 동국대에서 선(禪)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1994년 쌍계사 조실 고산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행불선원 선원장이자 불교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당신이 주인공입니다'의 DJ로 활약하는 등 문화포교에 앞장서고 있다.

또 이번 책을 비롯해 '영화로 떠나는 불교여행', '휴식', '세어본 소만 존재한다' 등 총 16권의 책을 집필했으며, 깨달음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전달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예컨대 스님은 이번 책에서 행복의 본질을 달에 비유한다.

"달은 항상 보름달입니다. 우리 눈에 초승달, 반달로 보인다고 해도 달 자체가 이지러지거나 반쪽이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달처럼 날마다 밝고 둥글게 살아갈 수 있는데, 지금의 행복을 미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kihu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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