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보영화 같은 김정남 암살…국제공항서 대담한 독살

입력 2017-02-15 01:16   수정 2017-02-15 10:57

첩보영화 같은 김정남 암살…국제공항서 대담한 독살

女용의자 2명 도주…北공작원 가능성, 정찰총국 소행 분석도

김정남 과거 '3대세습 비판', 망명설·소환불응설 등 제기돼

"김정은의 직접적 승인이나 동의 없이 암살 이뤄질 수 없어"

(서울=연합뉴스) 이귀원 기자 = '비운의 백두혈통' 김정남은 치밀한 사전계획하에 암살된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살해 배후나 배경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공항에서의 대담한 범행과 독극물 스프레이에 의한 암살이라는 예사롭지 않은 수법에 비춰 북한의 소행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정부 소식통과 현지 매체, 주요 외신 등에 따르면 김정남은 현지시간으로 13일 오전 9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 제2청사에서 오전 10시발 마카오행 항공편 탑승을 위해 수속을 밟던 중 신원 미상의 여성 2명에 의해 독살당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국내 항공사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정남은 공항내 저가비용항공사(LCC) 전용 터미널에서 출국을 위해 셀프체크인 기기를 사용하던 중 여성 2명으로부터 미확인 물질을 투척 받고 사망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고, 현지 매체 '더스타'는 뒤에서 다가온 누군가가 김정남의 얼굴에 액체를 뿌렸다고 보도했다.

김정남에 뿌려진 액체는 쉽게 구할 수 없는 치명적 독성 물질로 판단되며, 이 때문에 김정남에게 독성 물질을 뿌린 신원미상의 여성 2명은 북한 공작원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들 용의자는 유유히 공항을 빠져나가 택시를 타고 도주했으며, 말레이시아 경찰은 이들을 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치 첩보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과감하고 치밀한 범행이 인파로 붐비는 국제공항에서 자행된 것이다.

대북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김정은의 지시에 따른 북한 정찰총국 소행 가능성 또는 김정은 추종세력의 '과잉 충성'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김정남은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이후에도 주로 마카오나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중국 등 해외에서 자의 반 타의 반 떠돌이 생활을 해왔지만, 이복동생 김정은에게는 불편한 존재로 인식돼왔다.

김정은 체제에 급변 상황이 오면 '백두혈통'의 일원인 김정남이 김정은을 대체할 '대안세력'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돼왔고, 김정은으로서는 잠재적 권력투쟁의 '씨앗'을 제거할 필요성을 느꼈을 수 있다.

특히 김정남은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 전후로 북한의 '3대 세습'을 비판, 살해위협에 시달렸다는 얘기도 적지 않았다.

김정일 사후인 2012년 1월 12일 일본 도쿄신문은 김정남이 같은 달 3일 보낸 이메일에서 "정상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면 3대 세습을 용인하기 어렵다"면서 (부친에 의한) 37년간의 절대권력을 (후계자 교육이) 2년 정도인 젊은 세습 후계자(김정은)가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지는 의문이다"라며 김정은으로의 3대 세습을 비판한 바 있다.

2012년에는 북한 국가보위부가 평양의 김정남 세력 근거지를 습격했다는 얘기도 전해졌고, 한국이 김정남 망명 공작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나돌기도 했다.

한 대북 소식통은 "이명박 정부에서 (김정남) 망명을 한 번 시도한 적이 있으나 고위층에서 막판에 틀어 무산된 적이 있다"면서 "김정은의 소행이라면 남쪽으로의 김정남 망명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날려버린 것"이라면서 김정남의 망명 시도 관련성을 지적했다.

북한 권력기관에서 근무하다 한국으로 망명한 한 고위급 탈북민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한국으로 오기 전에 김정은이 김정남에게 북한으로 들어오라고 명령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김정남이 김정은의 이복형이지만 최고영도자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 처단에 들어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도 "김정남 암살은 김정은의 직접적 승인이나 동의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일"이라면서 "그동안 북한 정찰총국이 김정남 감시를 맡아왔고, 요인 암살에 관여하는 조직이라는 점에서 정찰총국이 직접 관여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김정일의 전처 성혜림(사망)의 조카인 이한영씨가 1997년 2월 15일 분당 모 아파트에서 남파 간첩의 권총에 맞아 열흘 만에 숨진 사건도 있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일본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는 "김정남은 이미 김정은 위원장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다"면서 "살해한 쪽이 북한이 아닐 수도 있다. (김정남이) 북한을 떠나 바깥에서 살아가면서 위험한 세계의 사람들과 여러 가지 관계가 많이 있었을 텐데 이와 관련됐을 수도 있다"고 추정했다.

lkw777@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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