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문정식 기자 = 중국의 시장 진출 규제에 좌절하고 있던 미국 기업들이 중국 측에 시정을 촉구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노선에 점점 동조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6일 보도했다.
미국 기업들은 최근 '호혜'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기 시작한 것이 이를 가리키는 실례다. 호혜란 중국 측에서 자국 기업들이 미국에서 누리는 것과 같은 시장 접근권한을 부여하거나 중국 기업들이 미국에서 상응하는 규제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중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은 오랫동안 중국 정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조심스러운 태도로 일관했다. 이미 확보한 입지를 상실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미국 기업들은 중국 정부가 산업정책을 통해 국내 기업을 키우는 데 불만을 품고 있었다. 특히 IT기업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사이버보안 부문 등에서 기술을 공유할 것을 압박하는 것도 이들의 인내심을 자극했다.
하지만 양자투자협정이 여전히 표류하는 등 지난 수년간 시장 접근을 둘러싸고 벌어진 미·중간 줄다리기가 거의 성과를 내지 못한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에서 중국의 시장 접근 규제를 비판하는 목소리들이 잇따르자 미국 기업들도 달라지고 있다.
베이징에 있는 미국상공회의소(암참)의 윌리엄 자리트 회장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중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이 더 강력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에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기업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노선이 현 상황의 '리셋'을 도모할 호기로 보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호혜를 강조하는 접근책이 필요하다면서 이는 온라인 결제와 클라우드컴퓨팅 부문의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한 IT기업 관계자는 알리바바는 실리콘밸리에서 자체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반면에, 아마존을 비롯한 미국 기업들은 현지기업들과 제휴를 통해서만 클라우드컴퓨팅 사업에 투자할 수 있게 돼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우리에게도 알리바바와 같은 사업을 하는 것이 허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이징 암참의 회원인 윌리엄 로소프 변호사는 호혜가 최근 이곳 미국 기업들의 화두로 떠올랐다고 밝히면서 "업계에서 강경해야 한다는 주장을 점점 더 지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 기관과 기업, 노동단체들이 뜻을 모아 일관적이고 효율적인 전략을 취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중국의 노련한 협상술을 고려한다면 미숙한 접근은 오히려 역풍을 맞을지도 모른다.
암참 회장을 지내고 현재 홍보·로비 회사인 APCO 월드와이드의 중국지사장을 맡고 있는 제임스 맥그리거는 "지금 중국은 '당신들이 원하는 것이 뭐요'라고 묻고 있는데 우리는 분명히 대답할 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정부에 가할 한 가지 압박 수단은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가 안보를 이유로 중국 기업들의 미국 투자를 저지토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보험 부문 등에서는 이를 정당화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역시 암참 회장 출신인 제임스 지머만 변호사는 중국의 호혜를 요구하는 강경노선이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저촉되는 것은 물론 중국 기업의 미국 투자를 위축시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반도체처럼 미국 기업들이 크게 앞서 있는 일부 업종에서는 호혜를 요구하는 접근 방식이 오히려 불리할지 모른다. 중국 기업들이 미국 기업들을 인수해 기술적 격차를 좁힐 수 있기 때문이다.
jsm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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