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남 부검 반대·조속 인도 요청 등 파장 최소화 '안간힘'
한·미·일, 진상규명 우선…北소행 확인땐 대북 인권제재 강화할듯
(쿠알라룸푸르·하노이=연합뉴스) 김상훈 황철환 김문성 특파원 = 지난 13일 말레이시아에서 일어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46) 피살사건을 놓고 치열한 물밑 외교·첩보전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 사건의 직접 당사국인 북한과 말레이시아가 줄다리기를 벌이는 가운데 한국, 미국, 일본 등도 가세하는 형국이다.
북한은 김정남 피살의 파장을 최소화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한국과 서방은 그에 제동을 걸고 김정은 정권의 잔혹성을 부각하며 대북 인권제재 강화 지렛대로 삼으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김정남을 누가, 어떻게, 왜 살해했는지 진상 규명이 먼저 이뤄져야 하지만 시작부터 마찰음을 냈다. 수사의 기본 절차인 사인 규명을 위한 김정남의 부검을 놓고 말레이시아와 북한이 갈등을 빚은 것이다.
북한대사관은 부검에 반대하며 시신 인도를 요구했지만, 말레이시아 경찰은 이를 거절하고 부검을 강행했다. 15일 부검 현장에 강철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까지 나타나면서 양측의 대립이 표면화됐다는 관측을 낳았다.
현지의 한 소식통은 "부검 전 시신 인도 요청은 주권 국가 간에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북한 측의 의도를 의심했다.
김정남 살해에 쓰인 것으로 알려진 독극물의 종류와 출처가 드러나 현지 경찰의 수사가 북한 공작원의 소행으로 향하는 것을 차단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말레이시아 현지의 중국어 매체인 '동방일보'는 이번 사건에 관련된 남성 4명 중에 북한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또 "여성 2명은 어떤 국가에 고용돼 이번에 암살을 자행했다"는 수사 관계자의 발언을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대사관은 부검 직후 조속한 시신 인도를 요청했지만, 말레이시아 경찰은 인도 여부를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밝혀 양측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한·미·일은 이번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직간접적으로 전달했거나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말레이시아의 수사를 지원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정부가 말레이시아 정부의 요청을 받고 이전에 확보해 놓은 김정남 지문을 통해 피살된 김정남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NHK가 보도했다.
정부 당국자는 "철저한 진상 규명을 바라고 있다"며 "말레이시아 측과 외교적 소통을 하고 있고 우리도움이 필요하면 협조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주요 20개국(G20) 회의 참석차 독일을 방문 중인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15일 김정남 암살사건과 관련, "앞으로 한반도와 동북아 역학 구도에 어떤 영향을 줄지 등에 (각국 외교장관들의) 관심이 있을 것 같다"며 "북한 정권의 성향을 판단하는 것으로서 공론화되지 않겠는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16∼17일 G20 회의 기간에 열리는 한·미, 한·미·일 외교장관 회의에서는 김정남 피살 이후 북한 동향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대응 방안도 논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국무부는 김정남 피살 직후 사안의 민감성을 의식해 공식 반응을 자제했다. 그러나 미 정부는 북한 요원들이 김정남을 살해한 것으로 강하게 믿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미국은 물론 일본 정부도 김정남 암살과 관련한 정보를 수집하며 북한 정세와 대북 관계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현시점에서 (김정남 피살이) 우리나라의 안보에 직접 영향을 주는 특이한 현상은 확인되지 않았다"면서도 "북한의 동향에 대해 평소보다 중대한 관심을 두고 주시하면서 경계·감시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남 암살 배후에 북한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 한·미·일이 대북 인권제재의 고삐를 더욱 죌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 인권문제가 재차 조명받으며 김정은 위원장의 국제형사재판소(ICC) 제소 문제가 다시 불거질 수 있다.
중국의 입장도 변수다. 그동안 중국이 북한의 암살 시도에 맞서 김정남을 보호해왔다는 점을 들어 북·중 관계가 악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반면 김정남의 정치적 비중이 미미해 별 영향을 못 미칠 것이라는 진단도 있다.
중국 지린(吉林) 대학의 중국 전문가 왕성은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김정남은 오래전 북한 정계를 벗어나 그의 영향력은 거의 없는 수준으로 약해졌다"라며 "김정남의 죽음이 미국에 대북 선전 재료를 제공할 수는 있겠지만 북·중 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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