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연합뉴스) 고은지 기자 = 정부가 전기용품뿐 아니라 의류 등 생활용품에도 안전 관련 의무를 강화하는 법을 만들면서 제대로 된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16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가 개최한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전기안전법) 개선을 위한 공청회'에서는 성급하게 법을 추진해 논란을 일으킨 산업통상자원부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전기안전법은 유사 제도인 '전기용품안전관리법'과 '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을 하나로 합친 것이다. 지난해 1월 27일 공포 후 1년간 유예기간을 거쳐 지난달 28일 발효했다.
이 법은 전기·유아용품에 적용되는 국가통합인증마크(KC) 인증서 보유 규정을 의류·잡화로까지 확대하는 것이 골자로 한다. 인터넷 판매자는 제품안전인증정보를 홈페이지에 게시해야 한다.
산업부가 이 법을 추진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인해 소비자보호에 대한 경각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안전성을 강화하는 데만 골몰한 나머지 이 법이 민생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제대로 생각지 못했다는 것이다.
인증을 받는데 드는 비용과 시간이 적지 않게 들기 때문에 다품종 소량 생산을 하거나 신속하게 제품을 내놓아야 하는 업종을 중심으로 반발이 거세게 일었지만, 정부가 공식적으로 관련 업계 상인들을 만나 의견을 듣는 자리는 한 번도 없었다.
무소속 홍의락 의원은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것과 같다"며 "정부가 세월호 참사를 보고 수학여행을 못 가게 했던 것과 같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국민의당 조배숙 의원은 "얼마 전 오후 3∼4시께 동대문 상인과 현장 간담회를 했는데 30여명이 참석했다"면서 "바쁜 시간인데도 오셨다고 하니깐 '우리가 망하게 생겨서 왔다'고 하더라"라고 성난 상인들의 마음을 전했다.
이어 "만약 전기안전법이 대기업에 영향을 미치는 법안이었어도 이렇게 쉽게 통과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19대 국회 때이기는 하나 이 법이 미치는 파급력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통과시킨 데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산업부 정만기 1차관은 법을 시행하기 전 어떤 절차를 거쳤느냐는 질문에 "의견 수렴이나 진지한 검토가 없었던 것 같다"며 "안전성에 치중한 나머지 면밀하게 살피지 못했다"고 수긍했다.
이어 "앞으로는 시간 가지고 제대로 된 법(개선안)을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다만 정부가 KC 인증에 드는 비용을 지원할 계획은 없느냐는 물음에는 "재정 부담이 엄청날 것"이라며 난색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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