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7년째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그리스 정부가 자국을 대표하는 문화 유산인 아크로폴리스 언덕에서 15분 간 패션쇼를 하는 대가로 거액을 주겠다는 이탈리아 명품 업체 구찌의 제안에 퇴짜를 놨다.
16일 그리스 관영 ANA통신 등에 따르면 그리스 국립고고학위원회(KAS)는 지난 14일 회의를 소집, 아크로폴리스 언덕을 임대해 패션쇼를 열겠다는 구찌의 제안을 만장일치로 거부했다.
위원회는 성명을 통해 "세계 문화유산의 상징인 이 특별한 장소는 그런 행사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거부 이유를 밝혔다. 그리스 수도 아테네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한 아크로폴리스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1호인 파르테논 신전과 원형 극장 등 고대 그리스 유적을 품고 있는 곳이다.
ANA통신은 구찌가 오는 6월1일 아크로폴리스에 자리한 파르테논 신전 앞에 무대를 꾸며 단 15분 동안 패션쇼를 하는 대가로 그리스 측에 100만 유로(약 12억원)를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구찌는 아울러 패션쇼 장면을 영상으로 찍어 전 세계에 방송하고, 아크로폴리스 복원과 홍보 활동 등을 위해 5천500만 유로(약 667억원)도 추가로 제공할 의사도 전달했다.
이에 대해 KAS 관계자는 "우리는 아크로폴리스를 홍보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리스 유력 일간 카티메리니 역시 사설에서 "아크로폴리스를 상업적인 용도로 대여한 일들은 굴욕적이었다"며 그리스 정부의 이번 결정을 지지하고 나섰다.
아크로폴리스는 과거 코카콜라, 루프트한자, 버라이즌 등 전 세계 굴지의 기업들의 광고 배경으로 등장한 적이 있다. 또, 미국 가수 제니퍼 로페즈와 KAS의 허가를 받지 않고 아크로폴리스를 배경으로 한 사진집을 발행하기도 했다.
한편, 그리스는 2010년 재정 위기로 국가 부도 위기에 올린 뒤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 등에서 3차례에 걸쳐 구제금융을 받아 연명하고 있는 가운데 경제 규모가 4분의 1로 쪼그라들고, 모든 분야에서 재정 지출을 줄이고 있는 터라 아크로폴리스를 비롯한 문화유산 유지·복원 사업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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