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지 최강' 독일 출신…"올림픽 이후에도 한국 루지 발전 위해 노력"
(평창=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안녕하세요?"
키가 큰 금발의 서양 여성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정확한 한국어 발음으로 인사했다.
독일 출신으로 지난해 연말 한국 국적을 얻은 루지 국가대표 선수 아일렌 프리슈(25)다.
17일 현재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슬라이딩센터에서는 썰매 종목의 하나인 루지 월드컵 겸 올림픽 테스트이벤트 대회가 열리고 있다.
대회 개막을 하루 앞둔 16일 평창에서 만난 프리슈는 경기 감각 끌어올리기에 한창이었다.
그의 유니폼과 썰매 모두에 태극기가 선명히 새겨져 있다.
한국 국적을 얻은 지 이제 겨우 2개월이 된 만큼, 아직은 인사말과 "추워요", "맛있어요", "얼마예요?" 정도의 말만 편하게 할 수 있다.
그는 "인터넷 한국어 강의도 듣고, 동료들한테도 배우고 있다"면서 "나중에는 지금보다 훨씬 잘할 수 있을 것"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썰매는 그 모양과 타는 방법 등에 따라 루지, 봅슬레이, 스켈레톤으로 나뉜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둔 한국 봅슬레이에는 원윤종-서영우, 스켈레톤에는 윤성빈이라는 걸출한 스타가 탄생했다.
하지만 유독 루지에서는 국제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가 없었다.
다급해진 대한루지경기연맹이 급히 수혈한 선수가 프리슈다.
그는 세계 루지 최강국인 독일에서 전문 엘리트 교육을 받고 자란 촉망받는 유망주였다.
하지만 성인이 된 뒤 경쟁에서 밀렸다. 독일에서 루지는 한국에서 양궁과 비슷하다. 대표팀에 발탁되기가 올림픽 메달을 따기보다 어렵다고 한다.
결국, 그는 2015년 은퇴했지만, 약 1년 만에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복귀했다.
귀화 제의를 받기 전 한국에 대해서는 무엇을 알았을까.
그는 아이돌그룹 '빅뱅'을 언급했다. 여동생이 K팝을 좋아해서 자기도 자연스럽게 한국 가요에 익숙해졌다고 한다.
역사 얘기도 했다.
프리슈는 "독일과 역사가 비슷한 점이 있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꼈다"라며 "물론 그 배경은 전혀 다르지만, 독일 역시 분단의 아픔을 겪은 바 있다"고 말했다.
대한루지경기연맹은 프리슈에게 '임일위'라는 한국 이름을 지어줬다고 한다.
한국 주민등록상에는 '아일렌 프리슈'로 돼 있지만, 애정을 담아 연맹 임원의 성을 따서 '임'씨,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라는 의미에서 '일위'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그는 "처음에 '일위'라는 이름의 설명을 들었을 때는 농담이라고 생각했다"며 "정말 그 의미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불편해졌다"고 털어놓았다.
연맹 관계자는 황급히 "가안일 뿐, 확정은 아니다"라고 수습했다.
이름이 어떻든,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프리슈에 대한 기대가 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1년이나 되는 공백 기간 탓인지, 태극기를 달고 출전한 대회에서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지난달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컨디션 난조까지 겹쳐 34위에 그쳤다.
처음 타봤을 때 마냥 쉽던 평창 트랙이 알면 알수록 어려운 것은 다행이다.
올림픽 전까지 외국 선수들보다 훨씬 더 많이 연습할 수 있는 한국 선수들은 트랙이 어려울수록 '홈 트랙 이점'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프리슈는 귀화에 대한 일부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한 듯 "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한국 루지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연맹 역시 그가 한국 대표팀에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도록 이끌 계획이다.
ksw0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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