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용의자들 '어설픈' 진술에 오락가락…북한계 잡아야 퍼즐 풀릴듯
말레이, 자국과 우호관계 강한 中·北 외교관계 고려해 '신중에 신중'
(쿠알라룸푸르=연합뉴스) 김상훈 황철환 특파원 =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피살 사건의 배후로 북한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상황에서도 사건을 수사 중인 말레이시아 정부 당국은 신중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범행에 가담한 용의자 가운데 일부가 잡혔지만 핵심 관여자가 아님을 시사하는 정황들이 나오면서 수사에 큰 진척이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말레이시아의 조심스러운 태도에는 북한과의 우호적인 관계와 최대 교역국 중국의 심기 등을 고려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17일(현지시간) 말레이 매체 등 외신을 종합하면 말레이시아 경찰은 용의 선상에 올려놓은 암살 가담자 6명 가운데 여성 용의자 2명을 체포했다.
김정남에게 접근해 범행을 직접 저지른 여성 용의자들이 잡히면서 애초 사건의 전모가 밝혀질 것이란 기대감이 높았다.
사건 해결의 기대감은 이내 의문 증폭으로 바뀌었다.
여성 용의자들은 경찰에서 용의 선상에 오른 남성들로부터 승객을 상대로 '장난'을 치자는 제안을 받았다는 진술을 했다. 김정남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는 말도 덧붙였다.
첫 번째 체포 여성은 범행 장소인 공항을 다시 찾았다가 붙잡히는 어설픈 행동도 했다.
여성 용의자들의 행동과 진술을 볼 때 이들은 고도로 훈련된 북한 공작원이 아닐 가능성이 짙다.
지금까지 드러난 두 여성의 국적도 북한과의 연관성을 찾을 수 없다. 첫 번째 체포 여성은 베트남 여권을 소지했고 두 번째 체포 여성은 인도네시아인이다.
검거된 용의자들이 북한이 아닌 제3국 국적자인 데다 핵심 용의자로 보기엔 행동이나 진술 면에서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따라서 북한 배후설 여부를 밝히려면 말레이 경찰이 용의 선상에 올려놓고 쫓는 남성 4명을 잡는 게 관건이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말레이시아 보안당국 소식통을 인용해 여성 용의자 2명과 도주 중인 4명의 남성은 청부암살자들로서 범행을 공모하기 이전에는 서로 알지 못했던 사이라고 보도했다.
베트남 여권을 소지한 여성 용의자는 경찰에서 남성 4명이 북한계이거나 베트남 국적자라고 진술했다.
4명의 남성 용의자 가운데 북한 정찰총국 소속의 40대 남성이 포함됐다는 보도도 나오는 상황이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40대 남성이 사건의 전모를 밝히기 위해 말레이 경찰이 반드시 잡아야 할 '키맨'인 셈이다.
부검에서 정확한 사인이 나오지 않고 추가 용의자 검거에 실패하면 사건이 미궁으로 빠질 가능성도 없진 않다.
현재까지 말레이 경찰이 수사를 통해 북한 배후설 여부를 분명하게 밝혀내지 못하면서 말레이 정부도 북한이 사건을 주도했다는 일각의 관측에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말레이시아 베르나마 통신에 따르면 아흐마드 자히드 말레이시아 부총리는 전날 "김정남의 사망 뒤에 북한이 있다는 건 현재 그저 추측"이라면서 북한의 암살 주도설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말레이시아가 원칙을 강조하며 신중 모드로 나오는 데는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했다는 분석도 있다.
북한과 말레이시아는 1973년 외교 관계를 맺은 이후 40년 이상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말레이시아가 북한의 사업상 '활동무대'이자 북한과 미국의 비밀회동이 이뤄지는 '우호지대'라고 설명했다.
말레이시아가 자국의 최대 교역국이자 북한의 우방인 중국 '눈치'를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정남 암살이 북한이 저지른 사건으로 결론 나면 인권 등의 측면에서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이 거세져 북한을 '외교 카드'로 활용하려는 중국이 난처한 입장에 놓일 수도 있다.
화교 자본이 지배하는 말레이시아로선 중국과의 관계가 틀어지는 게 결코 반길 일이 아니라는 점을 고민해야 한다.
kong7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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