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 불가한 피아노 여제의 존재감…오케스트라가 된 피아노

입력 2017-02-17 11:34  

비교 불가한 피아노 여제의 존재감…오케스트라가 된 피아노

'엘리소 비르살라제 피아노 리사이틀' 리뷰




(서울=연합뉴스) 최은규 객원기자 = "피아노가 이토록 어마어마한 소리를 내다니, 믿을 수가 없군요."

지난 16일 저녁 금호아트홀에서 펼쳐진 엘리소 비르살라제의 피아노 리사이틀을 관람한 음악애호가들은 그의 압도적인 연주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토록 힘차고 다채로우며 웅장한 소리를 뿜어내는 악기를 그저 '피아노'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비르살라제의 연주를 듣는 동안 작곡가 슈만이 브람스의 피아노 연주에 대해 표현했던 "피아노를 통곡하며 환호하는 오케스트라로 바꾸어놓았다"는 바로 그 문장이 떠올랐다. 때때로 비르살라제의 피아노 연주는 오케스트라의 울림을 능가하는 우주의 울림에 도달한 듯했고, 그때마다 그녀를 수식하는 '살아있는 피아노의 전설'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연 내내 비르살라제가 뿜어낸 강력한 에너지는 대단했다. 사실 슈만의 '아라베스크'로 시작해 슈베르트와 프로코피예프의 소나타, 슈만의 환상소곡집, 리스트의 스페인 랩소디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으로 구성된 리사이틀 프로그램은 칠순이 넘은 피아니스트에겐 벅찬 프로그램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비르살라제에게 그 작품들은 벅차기는커녕 마치 그녀 신체의 일부인 양 자연스럽게 흘러나왔고 리사이틀이 진행되는 동안 관객들은 그녀가 뿜어내는 강력한 힘에 사로잡혔다.

비르살레제는 로베르트 슈만 국제콩쿠르에서 우승 이후 '슈만 스페셜리스트'로 인정받은 연주자. 그만큼 첫 곡으로 연주된 슈만의 '아라베스크' 작품18의 첫 소절에서부터 흥미진진했다. 그녀는 이 곡에서 자주 반복된 론도 주제를 매번 예상을 깨는 새로운 방식으로 선보였을 뿐 아니라, 때로는 우수 어린 톤으로 때로는 강철 같은 음색으로 각 부분의 다채로운 맛을 살려내며 귀를 사로잡았다. 특히 선율에 내재된 운동감을 잘 살려낸 템포 감각과 견고하고 또렷한 톤이 일품이었다.

공연 전반부에 성격이 전혀 다른 슈베르트의 피아노소나타 제13번과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소나타 제2번을 연달아 연주한 것도 흥미로웠다. 슈베르트의 소나타에서 소박하면서도 따스한 연주로 공감을 불러일으킨 비르살라제는 프로코피예프의 소나타에선 마치 피아노를 타악기로 바꾸어놓은 듯 강력한 터치와 꽉 찬 음향으로 관객을 압도했다. 작품에 따라 자유자재로 표현방식을 바꾸는 대가의 면모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이번 공연의 백미는 슈만의 피아노를 위한 환상소곡집 작품12였다. 제1곡 '석양'을 비롯해 모두 8곡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슈만 특유의 고양된 느낌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곡마다 각양각색의 감성적인 특징을 담고 있어서 설득력 있게 표현해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비르살라제는 꿈꾸듯 몽환적인 음색으로부터 격하게 고양된 어조에 이르는 다양한 성격을 훌륭하게 살려내며 경탄을 자아냈다. 특히 마지막 제8곡 '노래의 끝'의 후반부에선 마치 그 모든 집착을 내려놓듯 초연하고 관조적인 연주로 마무리하며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자아냈다.

리스트의 스페인 랩소디의 현란한 연주로 본 공연을 마무리한 비르살라제는 기립박수를 보내며 환호하는 관객을 위해 모차르트의 로망스와 쇼팽의 마주르카와 왈츠에 이르는 3곡의 앙코르를 연주했다. 슈만으로 시작해 쇼팽으로 마무리된 비르살라제의 리사이틀은 비교 불가능한 이 시대 최고의 '피아노 여제'의 존재를 확인하는 시간이자 축복의 시간이었다.

herena88@naver.com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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